[시론/윤범모]미술품을 욕되게 하지 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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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범모 가천대 회화과 교수 미술평론가
윤범모 가천대 회화과 교수 미술평론가
검찰이 전두환 일가 미납추징금 특별환수팀을 구성해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1997년 대법원은 군형법상 반란 내란과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씨에게 무기징역과 추징금 2205억 원을 선고한 바 있다.

이번 검찰의 추징 조사 과정에서 미술품 수백 점이 압류됐다. 또 미술품? 사실 그동안 미술계는 동네북처럼 상처를 많이 입었다. 일부 재벌의 돈 놀음 때문이었다. 이번 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환수 문제에서도 빠지지 않고 부각된 것은 역시 미술품이었다.

추악한 사건의 중심에 미술품이 단골 품목처럼 끼는 세태에 미술인들은 불쾌감을 느낀다. 미술가의 순수한 창작의지는 묵살된 채 범죄의 방편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부끄럽고 화나게 하는 것이다.

미술품은 왜 이렇게 범죄의 ‘검은손’과 가까워지는가. 무엇보다 미술시장의 음성화 현상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일반인들은 당사자들끼리 은밀히 거래하는 미술품에 대해 알 길이 없다. 즉, 비자금 조성이나 자금 세탁 등 미술품 악용의 문이 넓다는 것이다. 상속세나 증여세를 무시하고 당사자끼리 얼마든지 주고받을 수 있다.

검은손은 일반 화상(畵商) 한두 군데와 단골을 맺어 예술품을 수집한다. 소장하고 있다가 다시 돈으로 바꾸고 싶을 때 이들과 거래를 한다. 이들은 다시 작품을 팔아 검은손에게 현금으로 돌려준다. 워낙 큰손이다 보니 화상들은 검은손을 관리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미술시장의 독과점 현상은 미술품 악용을 부채질한다. 경쟁체제가 무너진 사회에서는 부정의 씨앗이 자라난다. 외국처럼 미술 애호가가 자신의 신분을 노출하면서 당당하게 미술품을 거래하고 소장하는 사회, 하루빨리 그런 사회가 와야 한다.

미술품 악용을 막기 위한 대안은 무엇이 있을까. 무엇보다 미술품 소장 문화의 정착이 중요하다. 현재 시행 중인 미술품 양도소득세 제도를 적극적으로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물론 얼어붙은 미술시장의 형편을 생각한다면 이 제도가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있긴 하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부정적인 것만도 아니다. 미술품 거래 양성화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이제 기업이 공개적으로 미술품 수집에 앞장서야 한다. 손비 처리의 상한액을 대폭 높여 기업으로 하여금 떳떳하게 미술품 구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해야 한다.

더불어 미술품의 저작권 관리가 보다 합리화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은 작가 보호의 측면도 있지만, 작품이 어디로 가는지 이동 경로를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추급권(resale royalty rights) 같은 제도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추급권은 미술품을 재판매할 때 저작자가 매매대금의 일정 부분을 배당 받을 수 있는 제도다. 현재 유럽연합(EU)은 추급권을 시행하고 있다. 작가 생전은 물론이고 사후 70년까지 추급권을 보장받을 수 있어 작가 혹은 유족 지원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EU는 3000유로 이상의 작품에 대해 4%의 로열티를 징수한다. 프랑스의 경우 한 해에 1700만 유로를 모아 작가 1700여 명에게 나누어 준 사례가 있다. 돈도 돈이지만 작품의 이동 경로가 보다 투명하게 관리된다는 장점이 있다. 작품 가격이 올라간다면 그만큼 작가가 열심히 작업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 아닌가. 미술시장의 투명성, 이를 위해 미술품 소장 문화와 저작권 관리의 정상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부 몰지각한 부자들 때문에 미술계는 멍들어 있다. 상대적 박탈감은 물론이거니와 마치 미술계가 부정의 온상처럼 비치는 상황이 못내 아쉽다.

예술품을 탈세나 비자금 조성의 수단으로 활용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간곡히 부탁하고 싶다. 예술이 예술로 존재할 수 있게 놓아 달라고.

윤범모 가천대 회화과 교수 미술평론가
#전두환#미술품 악용#미납 추징금#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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