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백승진]의사들이 대접 받을 수 있으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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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진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경제정책관
백승진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경제정책관
몇 달 전 세 살짜리 아들이 7시간에 걸쳐 전신마취 수술을 받았다. 수술실 앞을 지키면서 오만가지 상상을 하며 불안에 떨었다. 이때 말끔한 정장 차림의 젊은 남성이 보호자들도 못 들어가는 수술실로 이어지는 자동문을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이 젊은 의사일 것으로 판단했던 생각이 틀렸음을 깨닫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서류가방에서 책자 비슷한 것을 꺼내며 “선생님, 저 앞에 왔습니다”라고 휴대전화에 속삭이는 남성은 내 눈엔 분명 영업사원으로 보였다.

당시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던 중 최근 대리수술에 대한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보았다. 어깨수술을 받은 한 40대 버스기사가 사망했는데, 경악할 일은 이 수술을 집도한 사람이 바로 의료기기업체의 영업사원이었다는 점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선, 어릴적부터 소위 ‘천재’ 소리를 들으며, 의대에 진학 후에도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전문훈련을 받아야 한다. 국민의 건강과, 크게는 생명을 다루는 고귀한 일이기에, 우리들은 의사들의 고소득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종종 드라마에서 동경의 인물로 그려지는 의사들의 정의로운 행동에 박수치곤 한다. 석해균 선장에 이어 북한 귀순병사로 이어진 ‘이국종 신드롬’은 의사에 대한 우리사회의 전반적은 시각을 반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물론 이번 대리수술 사건을 개별적인 일탈행위로 치부할 문제인지, 구조적 문제로 보아야 할지 단정 짓긴 어렵지만 어느 쪽이든 분명 사회 정의라는 통념에 반하는 일임에는 틀림없다.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로 꼽히는 존 롤스는 그의 저서 ‘정의론’에 위의 논점을 담았다. 롤스는 정의로운 사회를 ‘평등의 원칙’과 ‘차등의 원칙’이 충족되는 것으로 보았는데, 전자는 개인은 평등하게 주어진 광범위한 체계의 권리와 자유, 예컨대 민주적 권리와 평화적인 집회 등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으로 정의했다. 문제는 후자인데, 롤스는 경제사회적 불평등은 소외된 계층에 이득이 된다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의사의 사회적 역할을 감안한다면, 즉 의료 서비스가 극빈자들에게 적절히 제공된다면 우리 사회가 일정 부분 소득불평등을 용인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회마다 불평등이 허용될 수 있는 임계점은 상이하다는 조건을 달았다.

롤스의 혜안을 빌려 볼 때 경제적 불평등 정도가 심해서 임계점을 넘어선다면 가난의 대물림으로 이어져 “자식의 성적은 부모의 재력에 달렸다”라는 ‘웃픈’ 현실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반면 임계점 아래로 유지된다면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불평등은 극빈자들로 하여금 부자가 되기 위한 경제활동의 유인책으로 작용해 궁극적으로 불평등이 경제성장을 촉발시킬 것이다.

이런 대리수술 사건은 우리 사회에 중요한 함의가 있다. 만약 이번 사건이 무차별적으로 재생산돼 의료계 전체의 문제로 확대될 경우 고귀한 의사라는 직업은 젊은 세대에게 점차 외면받을 것이다. 의료계는 우리사회가 자신들의 높은 소득을 합리적으로 허용하고 있음을 간과하지말고, 이에 성실히 보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국가는 의료계가 선을 넘지 않도록 여러 관련 단체 간 갈등을 협의 및 조정함으로써 ‘차등의 원칙’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기 바란다.

백승진 유엔 서아시아경제사회위원회 경제정책관
#대리수술#수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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