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문환]기업비밀 공개는 최소한에 그쳐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문환 산업보안연구학회 초대 회장·전 국민대 총장
김문환 산업보안연구학회 초대 회장·전 국민대 총장
오늘날 군사력보다 경제력이 더 중요해지면서 경제스파이를 안보 문제로 생각하게 됐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에 따라 기업의 영업비밀 보호가 취약해지면서 이런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최근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도 미국 기업의 영업비밀과 특허 등 지식재산권이 해킹, 간첩행위 등으로 중국에 다량 넘어갔기 때문에 발생했다. 1990∼2016년 미국 정부는 연방경제스파이법에 저촉된 행위 173건을 기소했다. 이 가운데 48건이 중국과 관련된 사건이었다. 대표적으로는 100년 이상 철저하게 베일에 가려졌던 코카콜라 맛의 비밀과 관련된 것이다. 영업비밀은 공개되는 순간 기업이 엄청난 노력으로 만든 가치를 상실해 생존 자체가 위태로워지기도 한다.

그런데 영업비밀과 관련한 정보공개 문제가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두 차례나 발생했다. 첫째는 고용부가 산업안전법의 취지에 따라 영업비밀인 화학물질의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점이다. 산업계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은 사실상 거의 모든 화학물질에 대한 자료 제출과 공개를 의무화한 것”이라며 “기술을 해외업체에 무료로 알려주는 것과 다름없다”고 반발했다.

두 번째 사례는 고용부가 삼성전자의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전화 등의 생산시설에서 작업현황이 담긴 보고서를 공개하려는 것이다. 고용부는 “산업재해 입증에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공개해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보호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해당 자료에 공장 구조, 공정뿐만 아니라 영업비밀까지 공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고용부는 법원이 이미 삼성전자가 주장한 내용은 영업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며 근거를 댔다.

물론 기업의 이익은 공공의 이익보다 앞설 수 없다. 산업재해 피해자의 권리보호 차원에서 법원이 영업비밀 공개를 결정했듯이 영업비밀도 공개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공개는 피해자에 한해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한다. 삼성전자의 사례는 당사자인 고용노동청이 상고를 포기함은 물론 사전에 유해인자 측정위치도를 제외한 모든 자료의 영업비밀성을 주장하지 않았다. 고등법원은 1심인 지방법원 판결과 달리 측정위치도에 대한 영업비밀성만을 판단했고 당사자인 삼성전자는 사실상 다툼을 주장할 기회마저 박탈당했다.

나아가 분쟁의 당사자도 아닌 방송사 등은 정보공개청구권을 행사하며 고용부가 가진 영업비밀성 자료에 접근했다. 이렇게 고용부가 영업비밀성 자료를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것은 자칫하면 부당한 행정처분으로 불법사례에 해당될 수도 있다. 필자가 지난 30년간 영업비밀 보호에 대해 연구한 경험으로는 최근 고용부가 취한 태도는 법, 정책의 관점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이 적지 않다.
 
김문환 산업보안연구학회 초대 회장·전 국민대 총장
#기업비밀 공개#영업비밀#고용노동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