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치영]시장경제 원칙까지 흔들어서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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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장
신치영 경제부장
문재인 대통령은 소득주도성장 정책 기조를 바꿀 뜻이 없음이 분명해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 등 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사람 중심 경제로 표현하며 “사람 중심 경제가 뿌리 내리면, 성장의 혜택을 골고루 나누는 포용적 성장이 가능해진다”고 강조했다. 앞서 김수현 대통령정책실장도 “큰 틀에서 (경제정책의) 방향은 전혀 수정할 계획이 없다”고 말한 바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문재인 정부 2기 경제팀이 소득주도성장-혁신성장-공정경제 3대 정책 기조의 속도와 강도를 조절하고 보완해야 할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 부작용에 경기 악화까지 겹쳐 이른바 ‘이영자(20대·영남·자영업자) 이탈’ 현상이 벌어지고 지지율이 계속 떨어지고 있으니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기 경제팀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어떤 점을 수정 보완해야 할까.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최저임금 인상, 통신비 카드수수료 같은 생활비 부담 완화, 재정지출을 통한 사회안전망 구축 등 3가지 요소로 이뤄진다고 설명해왔다.

2년간 29% 올린 최저임금은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 주기 위한 것이었으나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이 아르바이트생과 종업원들을 줄이면서 취약계층 일자리가 줄어들고 빈부격차마저 악화되는 역설을 낳았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인사청문회 답변서에서 “최저임금 인상 속도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으며 이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고 밝힌 만큼 덧붙일 말은 없다.

생활비 부담 완화는 최저임금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다. 영세 자영업자와 취약계층의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라는 카드수수료 인하 과정을 보면 시장경제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생각마저 든다. 당초 여당은 연간 매출 5억 원 이하 가맹점에 적용하고 있는 우대 수수료 적용 대상을 7억 원 안팎으로 높이자는 의견을 제시했고, 금융위원회는 이에 대해 난색을 표시했다. 그러던 금융위가 얼마 후 우대 수수료 적용 대상을 30억 원 이하로 높이겠다는 안을 가져와 여당도 깜짝 놀랐다고 한다. 카드사들의 경영 현황을 분석해보니 이 정도 내려도 감당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섰다는 이유였다.

대통령 말 한마디에 허겁지겁 카드사 사장들을 불러 모을 정도니 카드수수료 체계가 어떤 면에서 불합리한 것인지 제대로 분석이 됐을 리 없다. 최근에 만난 전직 관료들과 전문가들은 협력이익공유제와 카드수수료 인하를 자유시장경제를 위협하는 대표적인 정책으로 거론했다. 한 전직 경제장관은 “거칠게 말해서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없는 자에게 나눠주는 것 아니냐. 이런 일이 반복되면 어떤 기업이 혁신을 하고, 제조 공정을 합리화하고, 비용을 절감해서 이익을 남기려 하겠느냐”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 기조는 ‘따뜻한 시장경제’였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경쟁과 혁신을 부추기되 경쟁에서 탈락하는 낙오자들을 복지 지출을 통한 사회안전망으로 보호하고 재기의 기회를 줘야 한다고 믿었다. 시장경제 원칙을 지키면서 거둬들인 세금으로 우리 재정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게 맞다.

문재인 정부에 노 전 대통령의 말을 상기시키고 싶다. “정치적으로 인기를 얻기 위해 대중에 영합하는 정책을 쓰는 것은 성공할 수도 없고, 오래가지도 않는다. 양극화 해소 정책은 경제 규모에 맞는 효율적 복지시스템을 점진적으로 갖추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변양균 전 정책실장의 저서 ‘노무현의 따뜻한 경제학’에서 발췌)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인상#카드수수료 인하#시장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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