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방탄소년단이 보여준 ‘사랑의 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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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박용 뉴욕 특파원
지난달 개막한 제73차 유엔총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코리안’을 꼽는다면 문재인 대통령, 리용호 북한 외무상, 그리고 케이팝 그룹 최초로 유엔 무대에서 연설한 방탄소년단(BTS)일 것이다. BTS의 인기는 6일(현지 시간) 뉴욕 시티필드에서 열리는 미국 투어 마지막 공연이 다가올수록 더 달아오르고 있다. 4만2000장의 공연 티켓은 20분 만에 매진됐다. 공연일 전후 공연장 주변 호텔방도 동이 났다.

유엔 무대까지 데뷔한 BTS는 새 얼굴에 목말라 있는 미국 미디어의 ‘블루칩’으로 단박에 떠올랐다. 지난달 NBC방송의 ‘아메리카 갓 탤런트’와 ‘투나이트 쇼’, ABC방송의 ‘굿모닝 아메리카’에 출연하며 미국인의 아침과 저녁 TV 프라임 시간대를 점령했다. 유명 쇼 사회자들은 이제 그들을 ‘한국에서 온 보이 밴드’가 아닌 ‘세계 최고의 보이 밴드’로 소개하기 시작했다.

멀리 한국에서 온 7인조 그룹은 어떻게 미국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아이돌 그룹의 전매특허인 화려한 군무와 음악, 패션 감각은 기본이다. BTS 앨범 ‘아이돌’ 뮤직 비디오는 발매 첫날 4500만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하며, 미국 최고 인기 가수로 꼽히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기록을 깨버렸다. 팝스타 레이디 가가나 비욘세의 팬을 능가하는 BTS의 열성적인 팬인 ‘아미(Army)’의 공헌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재능과 팬덤만으로 BTS가 누리고 있는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를 설명하긴 어렵다.

미국 언론은 BTS 유엔 연설 이후 다른 측면을 보기 시작했다. BTS가 미 대중 음악계가 금기시하는 청소년 폭력, 정신 건강, 불평등 등 사회적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독특한 춤과 노래, ‘섹시 레이디∼’라는 입에 착착 붙는 가사로 인기를 끈 강남스타일의 싸이와 달라 보인다는 얘기다. 유엔난민기구(UNHCR) 특사로 활동한 할리우드 배우 앤젤리나 졸리나 유엔아동기금(UNICEF) 친선대사로 활동한 샤키라와 비슷한 길을 걷고 있다고 분석한다.

리더 RM(본명 김남준·24)은 지난달 24일 유엔 연설에서 전 세계 청소년들을 향해 영어로 “당신이 누구든, 어디서 왔든, 인종과 성 정체성에 상관없이 나만의 목소리를 내라. 자신의 이름과 목소리를 찾으라”고 호소해 큰 박수를 받았다. ABC방송은 이례적으로 이 연설을 생중계했다. 소셜미디어에는 “RM의 연설을 인쇄해 액자로 걸었다”, “연설을 들으며 울컥했다”는 공감의 반응들이 실시간으로 올라왔다.

BTS는 글로벌 대중문화의 변방이던 한국의 청년들도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고적(思考的) 리더십(thought leadership)’을 얼마든지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줬다. 사랑과 같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강조한 메시지를 담은 콘텐츠는 국경도, 언어장벽도 뛰어넘어 세계와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BTS를 통해 증명됐다. BTS의 성공은 한국의 콘텐츠의 새로운 세계화 모델도 제시했다. BTS를 히트시킨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기업 가치는 현재 약 2조5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특히 젊은 세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진정한 사랑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RM)

세계 최고의 자살률, 치열한 경쟁, 패자 부활전이라곤 사실상 없다시피 한 절벽과 같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지 ‘자신을 사랑하라(Love Yourself)’는 BTS의 메시지는 더 절절하게 들린다. 어쩌면 자신이나 이웃을 사랑하는 법조차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기성세대를 향해 더 크게 외치는 절규가 아닐까.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유엔총회#방탄소년단#bts#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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