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경제에 마술은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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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침대는 가구가 아니라 과학이라는 광고가 있지만, 경제야말로 과학이다. 원인에 따라 결과가 나온다는 말이다. 실험실 과학과는 달리 참가자와 변수가 훨씬 많으나, 변치 않는 법칙이 있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를 보면 과학의 영역이 아니라 마술의 경지인 것 같다.

이달 22일 통계청이 올해 2분기(4∼6월) 가계동향을 발표했다. 1분기(1∼3월) 발표 때 문재인 대통령이 ‘아픈 대목’이라고 했던 바로 그 통계다. 소득 하위 20%의 소득은 1년 전에 비해 7.6% 줄었다. 1분기에는 사상 최대인 8.0%나 감소했다. 반면 상위소득 20%는 1분기 9.3%에 이어 2분기에 10.3% 늘었다. 당연히 양극화 격차는 더 벌어졌다.

이번에는 한국은행이다. 한은이 29일 ‘소비자동향조사’를 발표했다. 올 8월 소비자심리가 전달(101.0)보다 1.8포인트 떨어진 99.2를 기록했다. 2003∼2017년 평균치가 100이니 그 이하라는 것은 14년 평균보다 비관적이란 뜻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이 있던 작년 3월(93.3)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6개월 뒤 경기를 어떻게 보느냐는 향후경기전망(82) 역시 지난해 3월(77) 이후 최저치다.

통계청 자료에 대해 1분기에는 대통령이 아픈 대목이라고 했다가 곧바로 최저임금 인상의 긍정적 효과가 90%라고 입장을 바꿨다. 마음에 드는 부분만 쏙쏙 골라 편집한 통계가 근거였다. 2분기에는 ‘아픈 대목’ 발언도 없이 아예 90% 효과 자료를 만든 사람을 통계청장에 앉혔다. 한국은행 통계를 발표한 조사국장 자리는 괜찮을지 모르겠다.

경제가 과학이고 소득주도성장도 경제학자들이 만든 이론이라면 원인에 따라 결과를 예측할 것이다. 장하성 정책실장은 이달 19일 열린 당정청 회의에서 “(경제)정책들이 효과를 내기 시작하면 고용상황이 개선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을 늘려줘 전체 소비, 생산과 투자, 일자리를 늘리고 다시 소득도 늘리겠다는 게 소득주도성장의 골격이다. 그런데 올해 상반기 하위 20% 계층의 소득이 줄었고 그 효과가 6개월쯤 뒤에 나타난다면 최소한 이 영역에서 효과는 마이너스일 것이다. 소득이 줄고 소비심리가 얼어붙었는데 향후 소비가 늘 것이라고 본다면 과학이 아니라 마술이다.

대기업들이 약속한 수십조 원의 투자와 채용 계획이 올 하반기에 당장 효과가 나타날 리가 없으니 만약 연말쯤에 소비 증가에 따라 경기가 회복된다면 이는 상반기의 상위계층 소득 증가가 하반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는 게 앞뒤가 맞다. 혹은 서울 강남·북 가릴 것 없이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 때문에 생긴 자산효과일 수도 있다. 당장 현찰이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갖고 있는 주식이나 집값이 2억, 3억 원씩이나 올랐으니 이참에 근사한 외식도 하고 자동차나 새로 뽑자는 게 자산효과다.

공동체라면 성장의 그늘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양극화 해소에 대한 각별한 노력을 보여야 한다. 높이 뛰려면 안전 그물망이 필요하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이런 따뜻한 마음이 현실화되려면 무엇보다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 조급증 때문인지 최근 일부 시민단체, 노동계, 좌파 학자 등 대통령 지지 세력들 가운데에는 현 정부의 경제기조에 대해 의심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을 촛불혁명의 명령을 어기는 반동세력 취급하는 분위기마저 나타나고 있다. 이렇게 해서는 성장, 복지 모두 죽도 밥도 아닌 꼴이 된다. 경제에서 마이너스를 플러스로 둔갑시키는 마술은 안 통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통계청#가계동향#소비자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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