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김영주 장관의 ‘내 구역’ 챙기기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일 03시 00분


코멘트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푹푹 찌는 폭염이 국립기상연구소 공식 통계로 3384명의 사망자를 낸 1994년 여름을 생각나게 한다. 그해 정부과천청사 모든 건물은 오후 6시가 되면 그나마 희미하게 나오던 중앙공급식 에어컨이 딱 끊겼다. 그러면 공무원들은 체면 불고하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러닝셔츠 차림으로 한 손으로 연신 부채를 부치며 남은 저녁 일을 하곤 했다.

보다 못한 몇몇 기자들이 ‘엘리트 공무원들이 이렇게 열을 받아가면서 일을 해서 어떻게 제대로 국가정책이 나오겠는가’라는 취지로 청사를 관리하던 당시 행정자치부를 비판하곤 했다. 그러면 행자부 담당 공무원들은 “우리가 이렇게 욕을 먹어가며 에너지 절약에 힘쓰고 있다”며 오히려 윗선에 생색을 낸다는 말이 들렸다.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국정감사나 대정부질문 때 ‘옆 지역은 4차선 도로인데 우리 지역만 2차선이다. 왜 안 늘리느냐’며 핏대를 세우는 지역구 의원들이 있다. 너무하다고 생각한 정치부 기자들이 ‘국회의원인가 시의원인가, 민망한 지역구 챙기기’라는 식으로 비판하면 오히려 그 의원으로부터 “기사 정말 고맙다”는 감사 전화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 기사들을 싹 모아서 지역구에 내려가 “내가 이렇게 중앙에서 욕을 먹어가며 지역주민을 위해 뛰고 있다”고 자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막힌 의원님들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동맹 비동맹 가리지 않고 곳곳에 관세 폭탄을 퍼부으며 좌충우돌하고 있다. 지난달 2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는 미국의 보호무역주의에 대한 나머지 19개국의 성토장이었다. 세계무역 질서가 어떻게 되든 말든 자신의 지지층만 챙긴다는 비난이 미국 내에서조차 거세게 일고 있다. 그래도 트럼프는 ‘마이 웨이’다. 이러다가 정말 세계경제가 엉망이 되게 생겼다.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은 전국금융노련 출신으로 노동계에서는 비교적 유연하면서도 합리적인 인물이란 평가를 들으며 3선 의원까지 됐다. 그런데 최근 같은 노동계 출신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로부터 “청와대가 아무리 말을 해도 장관이 말을 안 듣는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최저임금 문제에서 김 장관이 노동계 입장만 생각하고 정부와 여당 전체 기조에 협력하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현 정부에 지분이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과거 어느 때보다 안하무인격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상대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노사정 대화를 복원하려면 노동계 입장을 고려해야 한다는 점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는 말 그대로 고용과 노동을 함께 생각해야 하는 부서다. 목소리가 크고 힘 있는 대기업, 금융회사, 공기업 근로자의 대변기관이어서는 곤란하다. 중소기업 근로자, 실업자, 조만간 취업시장에 뛰어들어야 할 청년들까지 모두 고용노동부의 관할이다. ‘일자리 지키기’와 함께 ‘일자리 만들기’에도 그 이상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자리다.

더욱이 장관이란 자리는 국무위원으로 자기 부처를 넘어 국가 전체를 봐야 하는 자리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대기업만 생각해서도 안 되고 중소벤처기업부가 중소기업 사장들만 챙겨서도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독일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 사례를 봐도 거대 노조의 양보 또는 협조 없이는 일자리 정부로 성공하기 어렵다. 이 정부에서 고용노동부 장관의 역할이 그만큼 막중하다. 조폭 영화나 TV 코미디를 보면 나와바리()라는 일본말이 자주 등장한다. 보통 자기 구역, 관할 범위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요즘 김영주 장관의 경우 이 ‘나와바리’ 정신이 너무 투철해서 탈이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김영주 고용노동부 장관#민주노총#전국금융노련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