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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한국 축구도 ‘중진국 덫’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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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한국 축구도 ‘중진국 덫’에 빠졌다

박용 뉴욕 특파원 입력 2018-07-02 03:00수정 2018-07-02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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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축구는 ‘50 대 50’의 게임이다. 운이 절반, 실력이 절반이라는 거다. 그냥 막 하는 얘기가 아니다. 축구 분석의 선구자로 불리는 크리스 앤더슨 미국 코넬대 교수 연구팀이 1938년 이후 수만 건의 국제 축구대회 경기 결과를 분석하고 내린 결론이다.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세계 랭킹 57위 한국이 랭킹 1위 독일을 2-0으로 격파한 ‘카잔의 기적’이 일어났다. 이런 게 축구다. 투혼을 발휘해 독일을 꺾었다고 해서 내일 또 이기리라는 보장은 절대 없다. 그런 게 축구다. 성적의 절반은 운이 아닌 실력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최대 축구클럽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며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나 리오넬 메시 같은 선수를 영입할 이유가 없다.

1990년대 이후 성적을 분석한 영국 경제전문지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축구 실력은 2002년 월드컵 4강 이후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고 진단했다. 축구 강국의 조건을 연구한 스테펀 시맨스키 미시간대 교수는 한국 등에 대해 “축구판 ‘중진국의 덫(middle income trap)’에 빠졌다”고 했다. 선진국의 기술을 재빠르게 모방하며 경제성장을 했지만 시장을 선도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역량을 확보하려는 구조 개혁 이행엔 실패해 성장이 정체된 한국 경제와 한국 축구가 닮았다는 얘기다.

원인을 알면 답도 찾아낼 수 있다. 8강에 오른 우루과이는 인구가 340만 명에 불과하지만 주말마다 공식 기록으로 집계되는 수백 개의 4∼13세 유소년 축구경기가 열린다. 8강 수훈갑 루이스 수아레스와 에딘손 카바니 같은 창의적인 선수가 이 유소년 대회 출신이다. 인구 33만 명의 아이슬란드는 600명의 코치를 지역 클럽에 배치하고 잔디 밑에 히터를 설치해 겨울에도 이용할 수 있는 소형 축구장을 2000년 이후 154개나 지었다. 아이슬란드의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은 그냥 이뤄진 게 아니었다. 독일축구협회는 프로 문턱에서 탈락한 재능 있는 청소년을 발굴하는 360개 지역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대회 결승전의 수훈갑인 안드레 쉬얼레가 이런 센터 출신이다.

자국 선수 육성 인프라가 열악한 국가들은 세계 축구 네트워크를 활용한다. 인구 400만 명의 크로아티아는 자국 선수를 독일 영국 스페인 등 유럽 빅 리그에 진출시켜 경쟁력을 확보했다. 반면 멕시코는 자국 리그의 인기 때문에 선수들의 해외 진출이 상대적으로 부진해 잠재력을 밑도는 성적을 내는 것으로 분석됐다.

창의성이 중요한 현대 축구에선 맹목적 연습과 회초리만으론 안 된다. 혹독한 훈련으로 악명 높았던 옛 동독이나 국가 주도로 엄청난 축구 투자를 하는 중국 같은 권위주의 국가의 역대 축구 성적이 신통치 않은 이유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나 독일 분데스리가 등 세계적인 축구리그를 TV로 즐기면서도 K리그 관중석은 늘 텅텅 비는 게 한국 축구의 현주소다. 자녀의 현실을 모르고 눈높이만 높은 학부모의 과잉 기대에 대표 선수들은 입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고3들처럼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고 말한다. 평소 실력은 반에서 57등인 아이에게 “시험에선 32등 안에 들어야 한다”며 투혼을 주문하고, 간신히 32등 안에 들면 다시 “16등 안에도 당연히 들어야 한다”며 회초리만 들어 온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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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든 경제든 시스템에 대한 투자와 개혁에 눈감고 남 탓만 해서는 ‘중진국 덫’을 빠져나올 수 없다. 4년 뒤 카타르 월드컵에서는 ‘카잔의 기적’보다 ‘선진국 축구’를 기대한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러시아 월드컵#카잔의 기적#한국 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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