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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기홍]문재인 대통령이 CVID에 대답 안 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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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기홍]문재인 대통령이 CVID에 대답 안 한 이유

이기홍 논설위원 입력 2018-05-31 03:00수정 2018-05-31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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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논설위원
판문점 2차 정상회담 다음날인 27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북한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받아들였느냐는 질문에는 대답을 흐렸다. 왜 그랬을까.

싱가포르 회담 취소 발표 직후 납작 업드린 김정은의 태도는 많은 이들에게 “김정은이 정말 달라진 거 같다. 간절하게 변화를 원하는 거 같다”는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런데 미국의소리(VOA) 방송이 29일 미국 내 북한 전문가 30명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국내에도 북핵문제를 20년 넘게 다뤄온 정통한 전문가들이 있다. 30일 이들의 의견을 들어봤다. 다들 낙관적이지 않은 분석을 내놨다.

진보·보수 정권 구분 없이 북핵 문제의 최고 전문가로 인정받는 한 전직관료는 “핵심은 완전한 비핵화의 내용인데, 김정은의 비핵화와 CVID는 다른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6일 판문점 판문각에서 2차 정상회담을 마치고 떠나는 문재인 대통령를 배웅하고 있다
김정은이 말하는 한반도 비핵화는 북한이 핵문제 발생의 근본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미국의 적대시 정책의 종식을 전제로 한다. 이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이다. 핵우산 문제 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한미동맹도 포함된다. CVID와는 거리가 있다.

집을 내놓긴 했는데, 어떻게 하든 팔겠다는 게 아니라 값이 맞아야 판다는 심산이다. 중개업소에선 “꼭 팔거라고 다짐했다”고 하는데 살 사람이 살펴보니 무조건 판다는 게 아니다. 게다가 파는 절차도 한번에 내주는 게 아니다. 마지막 단계까지 핵 역량을 갖고 있어야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고 중국은 물론 한국 내 좌파진영도 단계론에 동조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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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보면 2005년 9·19 합의 때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당시에도 국내외 언론들은 북핵문제가 해결됐다고 대서특필했다.

그때와 다른 건 미국이다. 9·19 때보다 단계가 대폭 줄어야 하며, 쉬운 것 먼저하고 어려운 것은 나중 순서로 배치했던 9·19 때와 정반대로 이번엔 프로세스 앞쪽에 핵무기 이전 등 핵심적이고 굵직한 걸 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그런 수준의 비핵화 원칙 합의가 이뤄질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 해결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9·19 이후처럼 프로세스가 이어지다가 어느 단계에서든 고꾸라질 수 있다. 9·19 때와 달리 지금은 정상(頂上)들이 직접 나서 무게감은 다르지만 기본 구조는 같다. 차량의 중량은 다르지만 가는 길은 같은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말 판을 흔들어볼 시점이라고 판단했을 것이다. 한국엔 진보정부, 미국엔 트럼프라는, 41세 때인 31년 전부터 대권을 좇아온 성취욕 넘치는 ‘장사꾼 대통령’이 있다. 미끼를 던지면 금방 반응이 올 조건이다. 국제제재는 계속 강화될 기류인데, 판을 흔들어 잘되면 안전보장을 받는 거고 중간에 잘 안돼도 한미 간, 미-중 간에 균열이 생길 수 있다. 비핵화 이행과정에서 좌초하면 중국, 러시아와 한국 내 진보진영은 그 책임은 미국의 완고함 때문이라고 편을 들어줄 것이다. 유엔제재는 안 풀려도 중국의 제재 이행은 느슨해질 것이다.

대체로 북한의 구상대로 진행돼 왔지만 김정은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있다. 트럼프의 변칙적 태도다. 트럼프의 회담 취소는 김정은의 셈법에 없었을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까지는 이뤄져야 판을 흔드는 게 가능하므로 김정은은 납작 엎드렸다. 그 영향으로 트럼프는 회담 취소 발표 하루뒤인 25일 “6월12일에 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말을 바꿨다. 판문점에서 2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기 하루 전의 일이다.

이처럼 지금까지 새 국면을 치고 나간 건 주로 김정은이었다. 이는 김정은 혼자서가 아니라 당 중앙위가 만들어내는 치밀한 전략에 근거해 나오는 것이다. 북한은 당 중앙위 산하에 대남·대미 전략만 짜는 두뇌가 수백~수천 명 있다. 옛 소련의 당 체제를 베낀 것이다. 청와대와 외교부 등에서 몇 명이 전략을 세우는 한국과는 차원이 다르다. 수십년 동안 방대한 인력이 대남 대미 전략에만 몰두해왔다. 외무성의 김계관 최선희 등은 당 중앙위가 만든 것을 읽는 보병 역할에 불과하다. 김정은이 직접 대응 전략을 짜고, 문 대통령의 설득을 감안해 방향을 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랫동안 북한을 상대해온 ‘달인들’이 내놓는 이런 어두운 분석이 지나치게 많은 경험 때문에 새로운 물결을 보지 못하는 ‘전문가의 오류’이길 바라지만, 현실은 기대보다 냉엄한 것 같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판문점 2차 정상회담#c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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