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치영]김동연이 사는 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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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장
신치영 경제부장
문재인노믹스를 떠받치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이 기로에 섰다. ‘일자리 증가와 최저임금 인상→가계 소득 증가→소비 증가→경제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게 소득주도성장 정책이다.

그런데 일자리는 늘지 않고, 최저임금을 대폭 올렸더니 자영업자와 중소기업들이 인건비 부담을 못 이겨 직원을 줄이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은 더욱 줄어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더 심해졌다는 통계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에 치명타가 됐다.

소득주도성장의 핵심인 최저임금 인상의 속도를 조절하자는 김동연 경제부총리의 주장이 나는 옳다고 본다. 김 부총리가 작심하고 이런 소신 발언을 하기가 쉽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통계로는 그렇지만 경험이나 직관으로 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이나 임금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본다”는 발언은 진보 진영으로부터 ‘근거 없는 발언으로 혼란을 부추긴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시장과 사업주의 수용성을 고려해 (1만 원 인상) 목표 연도를 신축적으로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발언은 아슬아슬하게 들렸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 원까지 올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뒤집는 일이니 말이다.

‘어공(어쩌다 공무원)에 밀리던 늘공(늘상 공무원)의 반격이 시작됐다’거나 ‘김동연 패싱론을 불식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등 김 부총리의 소신 발언의 배경에 대해 갑론을박이 오갔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의 부작용을 부인하는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과 ‘엇박자’를 드러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기자가 5일 본란에 썼듯 정부 내에 다양한 의견이 표출되고 치열한 토론으로 최선의 방안을 찾는 것은 바람직한 의사결정 과정이다.

물론 김 부총리가 해야 할 일이 소신 발언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방송에 출연해 화려한 언변을 뽐낸다고 해서 갈수록 어려워지는 경제에 대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통계청이 경기상황을 판단하는 10개 주요 경제지표 가운데 9개 지표가 하강 또는 둔화되고 있다. 김 부총리는 말이 아니라 정책으로 경제를 살려야 한다.

현 정부는 문재인노믹스의 두 기둥이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이라고 강조해 왔다. 하지만 정부 출범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혁신성장의 그림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았다.

김 부총리는 혁신성장의 전도사를 자처해 왔다. 김 부총리는 한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규제 개혁으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제조업의 생산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기업과 시장에서 성장의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우리는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혁신성장을 구체화해 소득주도성장으로 기울어진 문재인노믹스의 균형을 잡는 게 김 부총리가 가장 시급하게 해야 할 일이다.

김 부총리가 처한 현실이 녹록지 않다는 건 잘 안다. 청와대는 정책의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하고, 내각에는 정치인이나 시민단체 출신 장관들에 둘러싸여 있다. 29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긴급회의에서 정부는 김 부총리의 ‘속도조절’ 주장에도 소득주도성장의 기조를 유지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앞으로 장하성 정책실장 주도하에 관련 부처 장관들이 참여하는 경제점검회의를 갖기로 했다. 자칫 경제부총리의 컨트롤타워 입지는 더 흔들릴 수도 있다.

김동연은 지금 ‘생즉사(生則死) 사즉생(死則生)’의 갈림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살기 위해 정권과 코드를 맞추려고 하면 죽는 길이 될 수도 있고, 죽을 각오로 소신을 지키면 그게 곧 사는 길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과연 어떤 길을 택할 것인가.
 
신치영 경제부장 higgledy@donga.com


#문재인노믹스#소득주도성장#김동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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