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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부형권]싱가포르 형식이 회담 내용에 미칠 영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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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부형권]싱가포르 형식이 회담 내용에 미칠 영향

부형권 국제부장 입력 2018-05-29 03:00수정 2018-05-29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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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국제부장
10여 년 전 주니어 정치부 기자 시절 주요 정당 대선후보를 동행 취재했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니, ‘대통령 될지 모를 사람’이 친숙할 뿐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기자들끼리 있을 때는 후보를 ‘편하게’ 부를 때도 많았다. “○○○ 지지율이 많이 올랐네” 등.

그러던 어느 날. 후보와 함께 탔던 비행기가 강풍을 만나 착륙을 못하고 30분 이상 선회하는 사건이 있었다. 동승했던 당 관계자들은 “대통령 후보가 타고 계신다. 서울로 회항하자”고 외치기도 했다. ‘이 상황을 기사로 써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결국 무사했는데 뭘…’ 하고 넘겼다. 다음 날 당시 정치부장에게서 무시무시한 질책을 받았다. “너는 너의 취재원(대선후보)의 사회적 역사적 무게를 망각했다.” ‘친숙하다고, 중요한 취재원이 덜 중요해지는 건 아니다’라는 당연한 이치를 뼈아프게 깨달았다. 이때부터 취재원 호칭에 각별한 신경을 쓴다. 어떤 자리에서도 ‘○○○ 후보’ ‘○○○ 국장’ ‘○○○ 부장’ 등 공식직함을 함께 부른다. 적절한 격식과 형식을 지켜야 균형 있는 기사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됐기 때문이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끈 거스 히딩크 감독의 ‘반말 축구’도 다른 듯 같은 경우다. 그는 “그라운드 안에서는 누구나 동등하다. 경기 중 대화는 모두 반말로 하라. 형이라는 말도 쓰지 마라”고 지시했다. 좋은 성적(내용)을 위해선 선후배 간 존댓말보다 동등한 반말이란 형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가지면서 방명록에 남북한 공식 국명인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나란히 썼다. ‘핵을 포기하고 정상 국가의 길로 나아가겠다’는 북한을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제3조)을 무시하는 것이냐”는 시비를 할 수는 있겠지만 마땅한 다른 형식(북한 호칭)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문 대통령 말처럼, ‘친구 간 평범한 일상처럼’ 이번 회담이 이뤄질 수 있었던 건 ‘판문점 회담’이란 형식 덕분이다. 지난달 27일 1차 회담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했기 때문에, 판문점 북측 ‘통일각’ 2차 회담이 가능했다고 본다. 남북 간 바람직한 상호주의에도 부합한다.

같은 맥락에서 다음 달 12일로 예정된 북-미 정상회담이 기대 못지않게 우려되는 이유는 ‘싱가포르 회담’이란 형식 때문이다. 제3국 중립지대 싱가포르는 회담 결과(내용) 역시 예측불허의 중간지대에 있게 한다. 미 정부의 한 당국자는 “싱가포르 회담 결과에 따라 2차 회담 장소가 플로리다 마러라고(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개인 별장)가 될 수도 있고, 평양이 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는 한국 정부가 바라는 최고의 시나리오다. 그러나 적잖은 한반도 전문가들이 “(제3국) 싱가포르는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장을 박차고 나와 버려도 큰 부담이 없는 장소”라고 걱정한다.

“취재력 못지않게 상상력이 필요한 시대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한반도 뉴스를 다루는 기자들이 요즘 자주 내뱉는 말이다. 북-미 회담의 싱가포르 형식이 그대로 유지될까. 그렇다면 그 안에 어떤 내용(회담 결과)이 담길까. 혹시 ‘싱가포르에서 판문점으로, 회담 장소 막판 변경’ 같은, 또 하나의 반전이 일어나진 않을까. 그저 상상 한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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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형권 국제부장 bookum90@donga.com
#싱가포르 회담#북미 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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