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트럼프 앞에서 하면 안 되는 ‘3NO’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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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지금 일본이나 이런 나라들이 미국 시장에 TV를 얼마나 많이 팔고 있는 줄 아느냐. 그들이 우리 기업들을 작살내고 있다(knock the hell out of our companies).”

짐작하겠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말이다. 미 대선 전후는 물론이고 최근까지 자주 들었던 말이다. 그런데 위 말은 30년 전인 1988년 유명 토크쇼인 ‘오프라 윈프리 쇼’에 출연해 한 것이다. “knock the hell out”은 요즘도 트럼프가 즐겨 쓰는 표현 중 하나다.

많은 사람들은 트럼프가 예측불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그건 트럼프의 언행을 오래 지켜보지 않아서 하는 말이다. 어떤 측면에선 예측가능하다. 트럼프가 특정 언행을 최근 수년간 반복하거나 무엇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였다면 이는 미래에도 재연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트럼프가 요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북-미 정상회담을 거론하며 “회담장을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하는 걸 그냥 헛소리로 치부할 수 없단 얘기다. 트럼프와 잇따라 ‘세기의 거래’에 나설 두 사람(문재인 대통령, 김정은)에게 그를 수년간 관찰하며 나름대로 정리한, 트럼프 앞에서 하면 안 되는 3가지를 소개한다.

①“미국 대통령이니 이래야 한다”고 강요하지 말라=트럼프는 최근까지 “참모들이 대통령다워야 한다(be presidential)고 하는데 그게 잘 안된다”고 말해왔다. 이건 겸양의 표현이 아니라 실제 상황. 트럼프의 주장 중 하나가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깨겠다”는 것이다. ‘점잖은 척하는’ 워싱턴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발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이틀 전에도 트위터에 #DrainTheSwamp(워싱턴에서 오물을 빼내겠다)라는 해시태그를 달았다. 이런 트럼프에게 “세계 최강대국 미국 대통령이니 비핵화 협상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야 한다”며 정공법을 요구하면 오히려 탈만 난다. 지난해 9월 유엔에서 트럼프가 “북한을 멸망시키겠다”고 하자, 문 대통령이 “그런 강력함이 북한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대응한 게 오히려 트럼프의 귀를 잡아끄는 방식이란 거다.

②말로만 협상하다 손에 쥐여주는 것 없이 보내지 말라=사업가 출신인 트럼프는 숫자를 사랑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손에 잡히지 않은 현란한 수사는 질색이다. 요즘 백악관이 가장 치열하게 홍보하는 것이 실업률 수치다. ‘미 실업률이 3.9%로 4% 선이 깨졌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나를 마녀사냥하고 있다.’ 사흘 전 트럼프 트윗이다. ‘완전한 비핵화’보단 언제까지, 가령 2020년까지 비핵화를 위한 액션플랜을 취하겠다는 게 오히려 협상에 지속력을 더할 수 있다.

여기에 트럼프가 최소한 손에 뭔가 쥐었다, 승리했다는 느낌을 줘야 판이 깨지지 않는다. 그는 요즘도 미 전역을 돌며 “우리는 요즘 이긴 적이 없는데 이길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의 브랜드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도 결국 승리하는 미국을 구호화한 것이다.

③“전문가들이 그러던데…”라고 하지 말라=트럼프가 질색하는 말 중 하나는 pundit(전문가)이다. 실전 경험도 없는 학자들이 글로벌 사업체를 일군 자신에게 훈수를 둔다는 거다. “대북 협상에서 아무것도 해본 적 없는 전문가들(pundits)이 지금 와서 협상을 조언하겠다니 웃긴다(funny).” 지난달 22일 트윗이다. 오히려 그에겐 뒤에 (트럼프를 지지하는) 침묵하는 다수(silent majority)가 있다고 말해주는 게 훨씬 낫다.

트럼프는 만만치 않은 협상 상대다. 하지만 그는 올해 72세. 오랫동안 드러난 그의 말과 행동을 잘 들여다보면 성과를 낼 포인트도 찾을 수 있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도널드 트럼프#북미 회담#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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