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기홍]私가 끼면 평양의 배반을 부추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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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논설위원
이기홍 논설위원
강경매파 백악관 안보보좌관 내정, 김정은 방중(訪中)….

남북, 북미정상회담을 향한 쾌속 항로에 돌발변수가 잇따르고 있다. 본질은 명료하다. 제재로 궁지에 몰려 미국과의 담판을 원한 김정은은 패를 높이려 안간힘이고, 트럼프는 전임자들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며 ‘확실한 인물’을 부른 것이다.

트럼프-김정은 담판으로 ‘원샷 해결’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원샷은 없다. 어떤 근사한 합의가 이뤄진다 해도 비핵화까지는 길고 지난한 이행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우리 내부적 위험요인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의 대답은 비슷했다. 바로 사(私)가 개입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비핵화라는 본질 이외의 어떤 욕심이라도 끼어들면 프로세스가 망가진다는 것이다. 홍보욕구, 지지율, 업적 남기기 유혹 등이 그것이다.

2차 북핵 위기의 시발점인 2002년 미 정보 당국은 북한이 고농축우라늄(HEU) 프로그램 장비를 유럽 등에서 구입한 영수증 등을 입수했다. 한국 정부도 휴민트(탈북자의 증언 등)를 통해 북한의 HEU 개발 가능성 첩보를 입수해 미국에 전달했다. 미국은 그해 여름 북한이 HEU를 추진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요즘 뉴스의 인물인 존 볼튼 안보보좌관 내정자가 이때 등장한다. 당시 국무부 군축·국제안보 담당 차관이었던 볼튼은 2002년 8월 극비리에 한국에 와 HEU 관련 정보를 전달했다. 이어 9월에 열린 한미 외교장관회담에서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10월 제임스 켈리 국무부 차관보가 한국 정부에 재차 이를 얘기했다.

이어 켈리 차관보 일행이 10월 평양에 갔을때 강석주 외무성 1부상은 HEU 프로그램을 사실상 시인하는 발언을 했다. 방북단은 서울에 들러 한국정부에 강 부상의 발언내용을 설명했다. 그리고 북한의 제네바 합의 위반을 이유로 12월 중유공급을 중단했다.

하지만 한국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HEU 프로그램 존재를 반신반의하며 지속적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미 정부 핵심관계자는 현직에서 물러난뒤 “당시 김대중 정부는 HEU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전혀 감을 못 잡았다”며 “정책의 희망과 굳어져버린(정책의) 우선순위가 이성적 판단을 가로막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나중에 강 부상 발언 자체를 부인하면서 미국이 먼저 중유공급 중단 등 제네바합의를 깨서 핵개발을 재개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금도 한국내 일부 좌파세력이 북핵 위기 미국 책임론을 주장할 때 비슷한 논리를 편다. 그러나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아디르 칸 박사가 북한이 1990년대 후반부터 파키스탄의 은밀한 도움을 받아 핵개발을 진행해온 사실을 2000년대 중반 증언함으로써 책임론 논쟁은 종지부를 찍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10월 남북정상은 종전선언을 위한 3자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그러나 미국과는 사전 합의가 안 된 것이었다. 미국은 평화협정은 관계정상화와 비핵화가 완료되는 시점의 일로 봤다. 상징적 이벤트로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면 정전협정이 평화협정으로 대체되는 시점에 자연스럽게 이뤄져야한다는 입장이었다. 임기 내에 한반도 평화구축의 업적을 남겨보려는 의욕에서 성급히 추진한 결과 성과는 제로였다. 이번에도 청와대와 여권에선 3자 종전선언 추진론이 나오고 있다. 단계적 보상론도 나온다.

하지만 트럼프는 볼튼을 내정하는 등 보상에 대해 완강한 자세다. 필자는 2007년 볼튼을 인터뷰했다. 볼튼은 기존 북한과의 합의들이 실패한 것은 비핵화 약속만으로 제재를 해제해줬기 때문이라며 보상과 제재 해제는 완전한 비핵화 단계에서 이뤄져야한다고 여러번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볼튼은 엄포용 카드에 불과하다고 관측하지만, 볼튼은 모양내기 자리에 불과하다면 바로 뛰쳐나올 사람이다. 거의 매주 자신의 주장을 담은 e메일을 지인그룹에 보내며 지지클릭을 요청하는 집요한 인물이다. 지난번 미 대선 때 후보로 나서려 했을만큼 야심도 있다.

트럼프는 겉보기에 이 정도면 성공이라는 수준의 성과를 안고 회담장을 나설 수 있을 것이다. 얽힌 실타래를 한번에 잘라버리는 고르디우스 매듭식 해결처럼 보일지 몰라도 비핵화 이행의 길고 긴 행로가 남아있다. 그나마 지금 북미회담 단계까지 올라선 것은 압박의 효과다. 유일한 무기인 대북 압박은 끝까지 버리면 안 된다. 북핵은 북핵으로만 다뤄야한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남북 정상회담#북미 정상회담#북 비핵화#도널드 트럼프#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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