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광현]현대차, GM을 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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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제너럴모터스(GM)는 그냥 하나의 기업이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근대(Modern Times)’를 연 포드와 함께 ‘20세기형 대량생산·대량소비 체제’를 완성한 자본주의 발전사에 획을 그은 기업이다. ‘GM에 좋은 것은 미국에도 좋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100년 넘게 미국의 자존심이었던 GM이 금융위기를 맞아 2009년 파산하게 될 줄이야 미국인들은 상상이나 했겠는가.

대마불사 믿었던 GM

GM이 무너진 것은 기본적으로 경영진의 판단 잘못 때문이었다. 일본 차가 밀려오는데도 기름 잡아먹는 대형차 구성을 그대로 유지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대마불사(大馬不死·Too Big to Fail)라는 오만함과 안이한 인식이 깔려있었다. 미국 최강 노조도 나을 게 없었다. 현직은 물론이고 퇴직자, 그 가족에게까지 연금과 의료보장비가 지급됐다. GM 노조의 비아그라 구입비만 매년 1700만 달러(약 170억 원)어치에 달해 최대 단일 고객이었다.

미국 정부가 앉힌 민간 전문가들의 구조조정단은 GM을 파산시키고 뉴GM을 출범시켰다. 나쁜 자산과 경쟁력 없는 공장은 팔아 치웠다. 노조도 회사도 크게 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산직 근로자 대량 해고와 함께 노조도 복지 혜택을 줄이고, 이중임금 체계를 수용하고 2015년까지 월급을 동결했다. 그랬더니 노동비용이 2007년 시간당 78달러에서 2015년에는 54달러까지 떨어졌다.

돌고 돌아 결국 우리에게 타격을 가한 건 본사의 경영 전략 수정이다. 덩치를 키우고 유지하는 게 아니라 수익성 높은 사업에 집중하는 쪽으로 바뀌었다. 쉐보레 브랜드의 유럽시장 철수, 먹튀 논란을 빚은 호주 공장 폐쇄도 그 전략의 일환이다. 그 여파가 태평양을 건너 한국의 군산, 인천에 상륙한 것이다. 앞으로 어렵사리 공장들이 일단 돌아가더라도 수익성이 나쁜 사업은 정리한다는 GM 본사의 기본 방침이 그새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고비용 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지 못한다면 GM 공장들은 기약 없이 정부 보조금으로 연명하는 신세로 남아야 한다.

이게 GM에서 그치는 스토리일까. 미국의 GM과 마찬가지로 현대차는 한국의 국가대표 기업이다. 지난해 현대차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6.7%로 잘나갈 때에 비해 3분의 2 수준으로 떨어졌다. 중국 공장의 가동률은 절반 이하다. 현대차의 협력업체들이 무너진다는 소식들이 지방에서 들려온다. 전속 협력업체 500여 개의 영업이익률이 평균 2%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출이자도 못 갚는 좀비기업 수준이다. 이렇게 쥐어짠 본사 역시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4.7%로 GM을 포함한 글로벌 경쟁사들 가운데 꼴찌 수준이다. 이래서는 미래형 자동차의 연구개발(R&D)에 과감히 투자하기 어렵다. 이 와중에도 국내 최강 현대차 노조는 7% 기본급 인상을 얻어냈고 미진한 부분들은 투쟁에서 얻어내겠다고 결의를 다졌다. 이런 모습들에서 옛 GM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현대차에 GM의 그림자

GM이 몰락의 길을 걷던 2007년 미국의 한 경영대학원에서 마케팅 강의를 들을 기회가 있었다. 교수가 수업 전에 농담성 퀴즈를 냈다. 미국 사람들이 회삿돈으로 법인차를 사면 벤츠 BMW 같은 유럽산(産) 차를 사고, 자기 돈으로는 도요타나 현대차 같은 아시아산 차를 사는데, 그러면 GM 같은 미국 차는 누가 살까라는 문제였다. 정답은 미국의 ‘애국자들만 산다’였다.

근래 수입차 판매가 급증하고 있다. 주변에서 보면 파업하는 노조 꼴 보기 싫어 국산차 안 사고 수입차 산다는 사람이 꽤 많다. GM 공장이 문제가 아니다. 정신 차리지 않으면 한국의 애국자들도 국산차 안 사는 날이 오게 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현대차#gm#자동차#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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