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승헌]‘Team 문재인’에는 ‘영미∼’가 있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2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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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헌 정치부장
이승헌 정치부장
하도 소리를 지르기에 처음엔 ‘파이팅’ 비슷한 구호인 줄 알았다.

그러다 이게 팀원 이름이고, 나중엔 스톤의 방향과 세기를 결정하는 작전 지시라는 걸 알게 됐다. 평창 올림픽에서 ‘겨울 동화’를 써내려간 여자 컬링 대표팀인 ‘팀 킴(Team Kim)’의 스킵(주장) 김은정이 외친 ‘영미∼’ 말이다.

대표팀의 선전에 컬링 경기를 자주 보다 보니 기자는 이 구호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아보게 됐다. 조직이 잘 굴러가기 위해선 효율적인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새삼 확인할 수 있었다는 거다.

스킵 김은정의 작전 지시는 템포와 세기만 다를 뿐 대부분 ‘영미∼’다. 상황에 따라 ‘헐’ ‘업’ 등이 추가된다. 메시지가 일관되고 간결하다 보니 팀원들이 조직의 목표를 엉뚱하게 이해할 확률은 그만큼 낮다. 김은정은 스톤이 원하는 지점에 갈 때까지 30여 m 떨어진 팀원들이 들을 수 있도록 목이 터져라 ‘영미∼’를 외친다. 목표가 조직 말단까지 도달할 수 있는 전달력이다. 주로 ‘영미∼’를 부르지만 선영이나 경애가 필요하면 정확히 찾는다. 팀원들이 상황에 따라 미리 제대로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팀 킴’에 대한 관심 때문인지, 자연스레 우리 정부를 ‘팀 문재인’이란 프레임으로 들여다보게 됐다.

‘스킵’으로서 문 대통령의 ‘영미∼’는 좀 헷갈리는 편이다. 처음엔 ‘촛불 혁명’ ‘적폐 청산’을 외치더니 요즘은 ‘소득 주도 성장’ ‘청년 일자리 창출’ ‘6월 개헌’을 자주 외친다. ‘적폐 청산’은 지난해까지 외치겠다고 했는데 일부 팀원들은 여전히 이 구호에 맞춰 스톤을 움직이고 있다.

‘문재인 스킵’의 지시는 팀원들에게 속속들이 잘 전달되고 있을까. 어느 대통령보다 자주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조직 말단이 지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지, 알더라도 제대로 이행하고 있는지는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이렇다 보니 사람 좋은 문재인 스킵도 종종 공개적으로 팀원을 혼쭐냈다.

“청년 실업 문제가 국가 재난 수준이라고 할 만큼 매우 시급한 상황임을 내가 여러 번 강조해 왔다. 그런데 정부 각 부처에 그런 의지가 제대로 전달됐는지, 그리고 또 정부 각 부처가 그 의지를 공유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지난달 25일 청와대에서 팀원(장관)들을 모아놓고 공개적으로 혼낸 대목의 일부다. 그런데 청년 일자리라는 스톤을 제대로 못 움직였다고 팀원들만 닦달하면 될 일인지 모르겠다. 이 지시를 제대로 공유할 수 있도록 팀 차원의 소통과 노력을 했다는 말을 기자는 별로 들어보지 못했다.

문재인 스킵은 종종 승부처가 다가오면 결정구를 던져놓고 뒤늦게 ‘영미∼’를 외치는 경우도 있다. 평창 모멘텀을 살리기 위해 천안함 폭침의 주범인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방한을 전격 수용한 게 그렇다. 갑작스러운 수용 결정에 반대 여론이 폭발하자 팀(정부) 내부에서도 손발이 안 맞았다. 통일부, 국가정보원은 뒤늦게 ‘김영철 수용 불가피론’을 확산시켰지만 제대로 준비가 안 돼 오히려 반대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에게 “김영철이 갑자기 오겠다는데 안 받을 수도 없고 어떻게 하겠느냐”며 갑갑해했다.

문 대통령은 25일 트위터에서 여자 컬링 대표팀에 대해 “주전 4명이 10년 넘게 동고동락하면서 기량을 키우고 호흡을 맞춰 왔다고 하니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 않는다는 말이 실감 난다”고 했다. 컬링 신화는 소통에서 나왔다고 스스로도 본 것이다. ‘팀 문재인’ 내부를 들여다보고 국민과 소통 강화의 계기로 삼을 수 있다면, ‘팀 킴’의 은메달은 스포츠를 넘어 국정 운용의 측면에서도 여러모로 의미 있을 듯하다.

이승헌 정치부장 ddr@donga.com
#여자 컬링#영미#김은정#문재인#청년 일자리#청년 실업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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