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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기홍]백구가 평창에 못 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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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기홍]백구가 평창에 못 간 이유

이기홍논설위원 입력 2018-02-01 03:00수정 2018-02-0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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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논설위원
“마스코트는 개로 하시죠.”
 
2016년 초 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에 작은 비상이 걸렸다. 올림픽 마스코트를 무엇으로 정할지 청와대의 의견을 구했더니, 개로 했으면 좋겠다는 답이 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낸 의견인지, 참모가 건의한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취임식날 진돗개 백구 강아지를 안고 청와대에 입성했던 박 대통령이 우리 민족의 자랑스럽고 영리한 순종 견종인 진돗개나 풍산개 백구가 평창의 하얀 눈과 어울리는 이미지라고 생각했을 듯 싶다.
 
그러나 그해 4월 김종덕 당시 문화체육부장관과 조양호 조직위원장이 스위스 로잔으로 가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에게 그 의견을 전달했더니 펄쩍 뛰었다. “아니, 지금 그러지 않아도 한국의 개 식용 문제 때문에 세계 곳곳에서 올림픽 보이콧 주장이 나오는데, 어떻게 개를 마스코트로 합니까.”

올림픽 마스코트는 기념품 판매 등 올림픽 수익에 큰 영향을 미친다. IOC는 개를 무자비하게 잡아먹는 나라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마스코트가 개가 되면, 마스코트 자체가 엄청난 논란에 휩싸일 것으로 우려한 것이다. 결국 IOC의 반대로 다시 논의한 결과 평창 마스코트는 백호(수호랑)과 반달곰(반다비·패럴림픽)으로 결정됐다.
 

바흐 위원장의 우려대로 한국의 개식용에 반대하는 해외의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본부를 두고 있는 청원 전문 사이트인 ‘change.org’에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잔혹한 개 도살을 중지시켜달라고 요청하는 ‘평창올림픽 보이콧’이란 제목의 청원캠페인이 진행되고 있는데 31일 현재 서명자가 46만 명을 넘었다. 이밖에도 이 사이트에만도 한국의 개도살과 올림픽을 연관시킨 청원이 200건 가까이 진행되고 있다.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코리안독스 등 여러 단체들도 올림픽 스폰서인 글로벌 기업들에게 압박을 가하고 있다.
 
올림픽, 월드컵 등 한국에서 열리는 국제행사를 앞두고 해외 동물애호단체들이 개고기 반대 운동을 펼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88서울올림픽 때부터 보신탕은 사철탕, 영양탕 등으로 이름을 바꿔달아야 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강원도는 평창과 강릉 일대의 개고기 식당들에 대해 일시적으로라도 간판의 표현을 톤다운하면 수백만원, 업종을 변경하면 최대 2000만원씩을 지원해 준다. 평창에선 9곳 정도가 간판을 바꿨지만 강릉의 식당들은 별로 응하지 않고 있다. 눈가리고 아웅이지만,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외국의 눈을 너무 개의할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정말 소중한 문화라면 해외에서 뭐라해도 지켜나가야 한다. 그런데 갤럽 조사에 따르면 2015년 기준으로 지난 1년간 한번이라도 개고기를 먹어본 한국 사람은 27%에 불과했다. 2030 세대는 17%다. 우리사회에서 개식용 문화는 점점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소수의 ‘미식가’를 겨냥한 식용견 비즈니스로 인해 우리 사회가 지불하는 정신적 고통, 국가 이미지 손상은 너무도 크다.
 
현재 평창을 포함해 전국에는 3000여 곳의 개농장이 있으며, 매년 150~200만 마리가 도살되고 있다. 소·돼지처럼 인가된 도축장에서 법이 규정한 고통을 최소화하는 방법으로 도살하는게 아니라, 전기봉으로 지지고 몽둥이로 때려죽이는 등의 잔혹한 도살방법이 버젓이 자행되기도 한다. 1㎡ 남짓한 철망에 여러마리가 헝겊인형처럼 구겨진채 트럭에 실려 온 개들이 철망에서 안나오려하자 쇠꼬챙이로 찍어서 꺼내는 장면도 목격됐다. 식용견과 반려견의 구분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지만, 재래시장이나 대도시 인근의 개도살장에 가보면 반려견으로 흔히 키우는 푸들 래브라도 진돗개 등도 수두룩하다. 일부 개농장의 열악한 환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다. 사람이라면 고통스러워서 10분도 앉아 있지 못할 바닥까지 창살로 되어있는 우리에서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자라다 도축장으로 끌려간다.
 
우리사회의 애견 인구는 천만명을 넘어섰다. 문재인 대통령도 풍산개 마루와 유기견 토리를 끔찍이 아낀다. 그런데 같은 하늘 아래서 매년 백만마리가 넘는 개들은 최악의 조건에서 사육되다 끔찍한 고통을 받으며 도살돼 고기로 팔려간다. 이런 식의 사육과 도살은 동물보호법 등 현행법 위반이지만, 정부의 대응은 소극적이기만 하다. 개고기를 즐기는건 개인의 취향이니 왈가왈부할 필요 없다해도, 잔혹하고 비위생적인 사육과 불법적 도살은 법을 엄격히 적용해 종식시켜야한다.
 
‘소, 돼지, 닭은 먹으면서 왜 개고기는 문제삼느냐’는 식의 단선적 주장으로 상황을 도돌이표처럼 머물게 하면 안된다. 생명은 모두 소중하지만 지능과 감성, 교감능력의 스펙트럼에서 고등동물로 갈수록 그 생명을 빼앗을 때의 명분과 인간에게 주는 유용성이 비례해서 커야만 한다. 개는 그 스펙트럼에서 가장 고등동물 쪽에 있으며 인간에 대한 충성심과 친밀도가 특히 깊은 동물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가족처럼 여긴다. 개고기 애호가라할지라도 현재와 같은 비위생적이고 잔혹한 사육·도살을 찬성하는건 아닐 것이다.
 
1988서울올림픽은 우리사회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특히 1987년 봄 민주화 요구를 강경 진압할 태세였던 전두환 정권이 탱크를 동원하지 못한 주요 이유 중 하나가 올림픽이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고나서 올림픽의 힘을 새삼 느꼈다. 평창올림픽도 우리사회 업그레이드에 큰 동력이 될 것이다. 그중의 작지만 의미있는 성취 중 하나로 평창올림픽이 잔혹한 개도살과 개농장이 사라지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는 기록이 남길 바란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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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농장#애견 인구#올림픽 마스코트#진돗개 백구#올림픽의 힘#외국의 눈을 개의할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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