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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여론공장의 공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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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박용]여론공장의 공범들

박용 뉴욕 특파원 입력 2018-01-31 03:00수정 2018-01-31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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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 뉴욕 특파원
젊은 프리랜서 작가인 마커스 홈런드는 2015년 모델 에이전시에서 소셜미디어 관리자로 일했다. 트위터의 팔로잉이 늘지 않자 상사의 압박은 심해졌다. 해고 위협에 시달리던 그는 소설미디어마케팅 회사인 더부미(Devumi)의 문을 두드렸다. 돈을 주고 팔로어를 사서 실적을 채운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27일 보도한 ‘팔로어공장’ 더부미의 실태는 인기와 영향력마저 돈으로 거래되는 디지털 시대의 어두운 단면이다.

디지털 공간에서 인기와 영향력은 돈, 권력과 직결된다. 트위터, 페이스북, 유튜브 등의 소셜미디어 사이트에선 일반인도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거나 억대 수입을 올릴 ‘인생역전’의 기회가 있다. 하지만 돈을 주고 산 팔로어나 ‘좋아요’로 만들어진 가공된 영향력과 인기는 다른 얘기다. 사람들을 호도하고 여론을 조작해 공정한 시장 경쟁과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도 한다.

2016년 미국 대선 막바지엔 러시아와 연관된 5만여 개의 트위터 봇(bot) 계정에서 210만 건 이상의 대선 관련 자동 트윗이 날아왔다. 국내에서도 2012년 대선 때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봇 프로그램’으로 트위터 계정을 만든 뒤 주기적으로 글을 트윗하거나 리트윗한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일방적인 주장을 반복적으로 퍼 나르는 ‘여론공장’이 선거철마다 가동되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공간이 ‘여론공장 기술자들’의 난장판이 된 건 부도덕한 개인이나 악의적인 기관의 책임이 크다. 이를 방치하거나 조장한 소셜미디어도 면책되기 어렵다. 미 남캘리포니아대 연구팀은 트위터 계정의 최대 15%인 4800만 개가 트위터 봇 계정인 것으로 추정했다. 이 중 상당수를 더부미처럼 인기나 여론에 영향을 미치는 여론공장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대로 분류하기조차 쉽지 않다.

소셜미디어들은 의도적으로 인맥, 사람들의 반응을 수치로 표시해 사람들의 경쟁심리를 자극한다. 트위터만 해도 초창기 없던 팔로잉, 리트윗 숫자를 요즘엔 실시간으로 보여준다. 인맥과 인기를 게임처럼 즐기도록 고안한 것이다. 여론공장의 기술자들은 이 틈을 파고들어 은밀한 거래를 제안한다.

네이버와 같은 대형 포털사이트가 온라인 여론시장을 장악한 한국은 여론공장의 위협에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구글 뉴스서비스는 뉴스 목록을 보여주고 해당 언론사로 접속할 수 있는 링크만 제공한다. 자체 댓글 기능도 없다. 반면 네이버는 언론사의 뉴스를 가져와 한곳에서 보여주고 자체 댓글 기능까지 제공한다. 댓글 반응에 따른 보상 시스템까지 가동하고 있다. 뉴스 선정 기준의 공정성 시비는 물론이고 여론공장 기술자들의 집중 타깃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여론공장 기술자들이 만들어낸 댓글부대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일방적 주장과 독설을 늘어놓고 사라진다. 오죽하면 ‘댓글에 달린 댓글을 읽어야 진짜 여론을 읽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네이버는 댓글 조작 의혹을 경찰에 수사 의뢰했지만, 시비를 부르는 구조적 문제부터 스스로 손보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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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집단 지성은 소수 전문가들의 지식을 뛰어넘는다. 하지만 불량한 소수가 여론을 주도하면 지혜는커녕 극단적인 결론에만 도달한다. 죽을 때까지 앞 개미의 꽁무니를 따라 원을 빙빙 도는 ‘원형선회’의 비극을 피하기 어렵다. 대중의 지혜가 발휘되려면 개인이 최대한 독립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미국의 학교 교과과정에서 가짜 뉴스를 가려내고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매체 이해력)’ 과정이 도입되고 있는 건 그만한 이유가 있다.
 
박용 뉴욕 특파원 parky@donga.com


#마커스 홈런드#소설미디어마케팅 회사 더부미#여론공장 기술자들#미디어 리터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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