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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배극인]한국 경제도 토털 사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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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배극인]한국 경제도 토털 사커로

배극인 산업1부장 입력 2018-01-30 03:00수정 2018-01-30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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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1부장
몇 년 전까지도 한국은 주변국들에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우리가 잘해서이기도 했고, 다른 나라들이 뒤처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중국은 철강 조선 자동차 전자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한국 배우기에 열심이었다. ‘철강왕’ 박태준 일화는 지금도 회자된다. 덩샤오핑(鄧小平)이 1978년 신일본제철을 방문해 중국에 제철소를 지어달라고 하자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당시 회장은 “중국에는 박태준이 없지 않느냐”고 답했다. 덩샤오핑은 “그럼 박태준을 한국에서 수입하면 되겠군” 했는데 1992년 한중 수교 직후 중국이 제일 먼저 초청한 사람이 박 전 회장이었다. 2003년에는 그를 아예 경제고문으로 위촉해 샤오캉(小康·먹고살 만한 수준) 사회 건설을 위한 지혜를 구했다.

일본도 ‘잃어버린 20년’에 빠진 뒤 거꾸로 ‘한국 배우기’에 나섰다. ‘왜 한국 기업은 세계시장에서 이기는가’류(類)의 책과 포럼이 쏟아졌다. 2012년 일본의 한 지상파 TV는 “엔터테인먼트는 한류에 밀리고, TV는 삼성과 LG에 밀려 소니와 파나소닉 사장이 교체됐다. 이대로 가면 다 질 것이다”고 한탄했다. 한국의 전경련 격인 일본 경단련(經團連) 산하 연구소는 ‘2030년대부터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한국에 역전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당시 일본 언론은 “이미 역전된 것 아닌가”라며 냉소했다. 불과 6년 전 일이다.


어느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 중국은 한국엔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며 대놓고 완력을 휘두른다. 일본은 언제 슬럼프였냐는 듯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국내 기업인들은 중국과 일본 기업의 스피드에 까무러치고 있다. 최근 만난 안건준 한국벤처기업협회장은 “이대로 가다간 2, 3년 뒤에 한국 경제는 무너지겠다 싶다”고 했다. 안 회장은 대통령직속 일자리위원회 위원이다. 세계 3대 투자가로 꼽히는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지난해 8월 한국을 찾아 서울 노량진 학원가를 둘러본 뒤 “한국 청년들은 모두 공무원을 꿈꾸는데 이런 경우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한국의 미래를 비관했다. 청년들이 도전보다 안정을 추구하는 사회는 혁신이나 역동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어렵다는 이유다.

어떻게 해야 하나. 청년 일자리 창출의 기대주인 벤처기업인들은 기업 생태계의 혈관부터 뚫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벤처기업의 장점이 독창적 기술과 혁신 DNA, 유연성과 스피드라면 대기업의 장점은 시장 창출력과 자본력, 제품화 능력, 글로벌 시장 경쟁력이다. 이 둘이 ‘윈윈’할 수 있는 혁신 생태계가 조성돼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국내 대기업들은 금산분리다, 문어발 확장이다, 경영 개입이다, 온갖 논란에 휘말리기 싫어 아예 해외로 나가 비싼 값에 벤처기업들을 사들이고 있다. 그 와중에 비슷한 기술을 가진 국내 벤처들은 싹도 못 틔우고 고사한다. 대기업들이 기술 가치만 보고 투자했다 실패하면 ‘배임’ 혐의를 덮어쓰는 선례도 국내 벤처 생태계의 싹을 자르는 주범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규제혁신 토론회에서 ‘규제 혁명’을 강조했다. 옳은 방향이다. 다만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 규제 혁명으로 탄생한 벤처들이 쑥쑥 커나가도록 법과 제도를 정비해 대기업과 함께 뛸 수 있는 ‘팀 코리아’를 구축해야 한다. 대기업에 문제가 있다면 핀포인트해 대응하면 된다. 세계는 이미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 역량을 총동원하는 ‘토털 사커’ 시대다. 2000년대 초만 해도 한국 벤처 생태계를 부러워하던 이스라엘 벤처를 지금 한국은 거꾸로 벤치마킹하고 있다. 세계에서 끌어들인 유대인 자금의 힘이다. 한국엔 대기업 자원이 있다.

배극인 산업1부장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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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강#박태준#덩샤오핑#청년 일자리#문재인#규제혁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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