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정훈]김정은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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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은 그를 “진심 있는 지도자”로 평가한다. 실제 그는 뱉은 말대로 행동한다. 북한에 대해선 “외교적 해법이 실패하면 군사행동이 불가피하다”고 말해 왔다. 이건 강경파와 대화파의 생각이 같다.

트럼프는 지금 외교적 해법이 실패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백악관은 평창 올림픽 이후에 쓸 대북 군사옵션을 구체화하고 있다. 최근 만난 워싱턴 싱크탱크의 관계자는 “지난주 백악관으로부터 대북 군사공격의 방식과 득실에 대해 분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그간 옵션으로만 생각했는데 강한 실행 의지가 느껴져 놀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핵과 미사일 제거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북한이 패망을 무릅쓰고 반격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 반격 시 한국과 주한 미국인의 피해를 감당할 수 있을지 검토해 대통령에게 보고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테이블 위에만 있던 옵션이 실행계획으로 진화했다는 얘기다.

19일 발표된 미국의 국방전략보고서는 압도적 군사력을 통한 북핵 제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미국은 2003년 3월 이라크 공습 때 6개월 전부터 전략자산을 걸프만에 집중 배치했다. 최근엔 본토에 있던 전략폭격기 B-2 3대와 B-52 6대를 괌으로 이동시켰다. 이라크전쟁 때 사담 후세인 추종 세력을 뿌리 뽑은 전략자산들이다. 핵추진 항공모함 칼빈슨호도 올림픽 개막 전후 한반도 해역에 도착한다.

미국은 명분만 주면 때릴 분위기다. 올림픽 이후 북한의 도발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다. 탄두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완성한다고, 미사일을 실거리 발사라도 하는 날엔 ‘울고 싶은데 뺨 때려 주는’ 상황이 올 수 있다.

중국도 미국의 군사행동에 필사적으로 반대하진 않는 기류다. 중국 환추시보는 지난해 4월 “미국의 ‘외과수술식 공격’에 대해 외교적 수단으로 반대할 것”이라고 했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지난해 12월 “유사시 휴전선을 넘더라도 반드시 복귀하겠다고 중국에 약속했다”고 밝혔다. 북핵 제거만을 위한 군사공격에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한미 관계는 올림픽 이후 악화될 조짐이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26일 “한미 군사훈련이 재개되면 북한이 도발할 수 있다”며 훈련 중단 필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미 합참은 “훈련 중단은 없다. 올림픽 이후 즉각 재개될 것”이라고 했다. 북한을 믿고 싶은 문재인 정부와, 뻔한 이야기는 듣지 않겠다는 트럼프 정부 간에 갈등의 불씨가 지펴진 셈이다.

관건은 문 대통령이 김정은을 트럼프 앞에 앉히느냐다. 물론 앉고 말고는 김정은 마음이다. 비핵화를 거부한 김정은은 문 대통령 뒤에 숨을 셈이다. 올림픽에서 연출된 감동으로 군사공격 명분까지 떨어뜨리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트럼프는 우리를 믿지 않는다. “한국의 동의 없이는 전쟁 없다”는 정상 간 합의가 무용지물이 될 수도 있다.

북한의 적화야욕은 ‘대화의 딜레마’를 만든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최근 “김정은은 핵으로 한반도를 통일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는 비핵화와 주한미군 철수의 맞교환을 논의하는 장이 될 수밖에 없다. 체제를 위협하는 주한미군을 그대로 둔 채 핵을 포기하는 건 북한에 자살행위다. 북-미 간 평화적 해법이 대한민국의 안보 이해와 충돌할 수 있는 것이다.

대화가 평화를 보장한다는 이분법적 논리는 함정에 빠질 여지를 남긴다. 북-미가 대화하더라도 대한민국의 이해는 김정은이 아니라 트럼프가 챙겨줄 수밖에 없다. 절대 안 된다는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도 트럼프의 눈치를 먼저 봐야 하는 게 현실이다. 김정은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박정훈 워싱턴 특파원 sunshade@donga.com
#도널드 트럼프#김정은#평창올림픽#대북 군사옵션#미국 국방전략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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