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배극인]국민 세금, 공짜 돈 아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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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부장
배극인 산업부장
경제대국 일본에도 굶어죽는 사람들이 있다. 대부분 병들고 고립된 가운데 닥친 고독사다. 드물지만 생활보호 수급을 신청했으면 적어도 아사(餓死)는 면했을 텐데 그냥 버티다 목숨을 잃는 사례도 있다. 남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다. ‘남’은 세금 내는 이웃이다. 일본도 요즘은 세태가 바뀌어 부정수급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긴 하다. 하지만 이를 비판하는 기사가 연일 오르내리는 걸 보면 세금 문제에 참으로 민감한 사회다.

2009년 반세기 만에 정권교체를 이룬 일본 민주당이 불과 3년 만에 다시 정권을 내준 것도 세금 때문이었다. 무더기 포퓰리즘 공약을 이행하느라 나라 곳간이 텅텅 비자 소비세(부가가치세) 인상에 나서면서 지지율이 급락했다. “거짓 공약에 정권을 도둑맞았다”는 야당의 십자포화 속에 치러진 총선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한국에서도 1977년 도입된 부가가치세로 바닥을 친 민심이 2년 뒤 부산·마산 시민항쟁(부마항쟁)으로 이어졌다는 평가가 있다. 박정희 정권 종말의 단초였던 셈이다.

세금은 한 시대의 건축 양식을 통째로 바꾸기도 했다. 1696년 프랑스 루이 14세와의 전쟁자금이 필요했던 영국 윌리엄 3세는 주택 창문에 세금을 부과했다. 이른바 ‘창문세’다. 창문 개수에 따라 세금을 매기자 급기야 창문 없는 집까지 등장했다.

지금 정부가 세금의 무게를 너무 가볍게 여기는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아동수당이나 기초연금 인상은 복지 차원에서 그렇다 치더라도 직무와 무관한 시민단체 경력까지 공무원 호봉에 반영하겠다는 건 선뜻 수긍하기 어렵다. 더구나 정부는 이미 집권 5년 동안 공무원을 17만 명이나 늘리기로 해 국민은 인건비 대느라 허리가 휠 지경이다. 앞으로 10년간 추가되는 공무원 인건비만 52조 원이라고 한다. 이후로도 인건비와 연금 지급액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최저임금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있는 줄 알면서도 왕창 올려놓고는 3조 원을 보조한다고 한다. 기업이 부담해야 할 임금 인상분을 국민 세금으로 때우는 셈인데 이럴 거면 애초에 신중했어야 했다. 보조금을 나눠주는 데 드는 행정비용 역시 국민 세금이니 비효율도 이런 비효율이 없다. 부실기업에 대한 구조조정도 ‘일자리’를 앞세워 표류시키고 있다. 국민 혈세로 망한 기업을 연명시키는 사이에 멀쩡한 기업까지 골병들고 있다. 매사 이런 식이니 해마다 파업을 벌이는 대기업 노조에서 ‘회사가 망해도 상관없다. 결국 정부가 책임져 준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난해 근로소득자의 48%는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면세자였다. 국민 절반이 세금 부담을 지지 않으니 퍼주면 퍼줄수록 지지율이 올라가는 구조다. 정부가 포퓰리즘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퍼주고 모자라는 돈은 고소득층이나 기업을 타깃으로 소득세와 법인세를 올려 충당하면 된다. 모든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간접세만 피하면 된다. 대표적 간접세인 부가가치세를 올렸다 민심을 잃은 박정희 정권이나 일본 민주당 정권의 실패 사례가 남긴 정권 운영의 교훈이다.

이런 식으로 5년은 버틸 것이다. 그 사이에 기업은 하나 둘 해외로 떠나고 국민은 점점 공짜 복지에 길들어갈 것이다. 어느 순간 임계점이 왔을 때 책임지는 사람은 누구 하나 없을 것이다. 모든 복지예산을 통합해 전 국민에게 200만 원씩 나눠준 뒤, 소득이 많으면 나눠준 돈보다 세금을 더 내되 소득이 없어도 한 푼이라도 내게 하면 남의 돈 아까운 줄 알까. 최근 만난 어느 원로 경제관료 얘기다. 이래저래 우울한 연말정산 시즌이다.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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