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성희]수능 만점자는 어디로 갈까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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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정성희]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입시철이 되면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는 아이들은 뉘 집 자식인지 궁금해진다. 가채점 결과 작년에 이어 ‘불수능’이었다는 2018학년도 수능 만점자는 재수생이 9명, 재학생은 2명이었다. 수능에서의 ‘재수 강세’는 놀라울 일도 아니고 관심은 역시 고3 만점자다.

공부 좀 하면 의대로

재학생 수능 만점자 중 한 명은 자사고나 특목고가 아닌 일반고 출신이었다. 모든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그렇듯 “학원 대신 혼자 공부하고 하루 7시간 잤다”고 말해 대다수 학생과 부모들의 염장을 제대로 질렀다. 이 학생은 서울대 의대에 수시 지원을 해서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수시는 수능 최저기준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수능 만점이 합격의 변수는 아니다. 인적성 면접을 도입한 서울대 의대는 과거 수능 만점자를 탈락시킨 전례가 있다.


수능이 도입된 1994학년도부터 2015학년도까지 만점자 45명이 선택한 진로를 보면 문과는 법조인, 이과는 의사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만점자가 20명이었던 2001학년도와 원점수를 발표하지 않았던 2008학년도는 제외된 통계다. 문과는 법대나 경영대로 진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이과는 2000학년도를 기점으로 진로가 갈렸다. 1999학년도까지는 이공계를 선택해 유학 가는 경우가 일반적이었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2000학년도부터는 의대 일색이었다.

의대 쏠림은 공시 열풍과 함께 우리나라가 망해가는 징조라고 본다. 학생과 학부모 개인으로는 합리적 선택이지만 인적 자원배분의 왜곡이라는 점에서 잘못된, 사회적 병리현상이다. 최근 5년간 서울대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한 학생이 매년 300명을 넘고 그중 30∼40%가 타 대학 의대에 합격한 이공계 학생들이다. 학생들이 ‘인서울’ 의대와 지방대 의대를 채운 다음 스카이(SKY) 자연계나 공대에 진학한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엉덩이에 진물이 나도록 공부하고 그나마 수련과정에서 교수와 선배들의 비인간적 대우와 모멸감을 견뎌야 전문의를 딸 수 있다. 자식이 이런 생활을 하면서까지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그토록 많다니 놀랍기만 하다. 직업으로서 미래도 밝지 않다. 매년 병원이 10개 생기면 8개가 경영난을 이유로 문을 닫는다. 돈에 내몰린 의사가 재혼한 아내를 독살한 일도 벌어지는 세상이다.

벤처투자자 비노드 코슬라가 2012년 “의사의 80%가 닥터알고리즘에 자리를 내줄 것”이라고 예고했듯 인공지능(AI)의 습격은 시작됐다. IBM 닥터왓슨의 암 진단 정확도는 90%를 넘어섰다. 구글은 하버드대 유명 심장전문의 제시카 메가를 영입하는 등 헬스케어에 공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정부도 어제 4차 산업혁명의 핵심 사업으로 맞춤형 정밀진단 치료를 육성하겠다고 발표했지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의대에 지원한 학생들의 자기소개서는 천편일률적이다. 대부분 세계보건기구(WHO) 이종욱 전 사무총장이 롤 모델이고 가족이 아팠던 경험 때문에 의사가 되겠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작 합격하면 돈 안 되는 전공을 하겠다는 사람은 드물다. 강대희 서울대 의대 학장은 “‘그래도 의사가 낫다’는 경험칙은 요즘처럼 변화가 빠른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의대 쏠림은 병리현상

올해 수능을 치른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학생들이 지금 배우는 지식은 이들이 40세가 될 때는 쓸모없어진다는 점이다. 수능 만점자가 의대를 가겠다는 뉴스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 무엇보다 그건 뉴스도 아니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고3 수능 만점자#의대 쏠림#수능 만점자가 의대를 가겠다는 뉴스를 더는 보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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