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수용]김현종, 미국 제대로 아는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홍수용 논설위원
홍수용 논설위원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지난달 미국 워싱턴에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관계자들을 만났다. 동석한 프레드 버그스텐 명예소장 겸 선임연구원은 미 재무부 국제담당 차관보 출신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환율조작금지 규정을 넣자고 주장한 강경파다. “한미 FTA 재협상에서 미국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김 부의장의 질문에 PIIE 측은 “자동차”라고 했다. 한국인은 미국산 차를 선호하지 않는 편이라고 하자 “그래도 주된 관심은 자동차 시장”이라고 했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수십억 달러어치의 무기를 구매키로 하면서 재협상에 속도가 붙게 됐다. 하지만 미국 경제계는 한국이 미국 차를 사서 바다에 내다 버리는 한이 있어도 일단 구입하라고 할 정도로 자동차를 협상의 핵심으로 본다.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생각도 그렇다면 미국은 자동차 수입 확대를 요구할 것이고 우리는 다시 계산기를 두드려야 한다.

재협상의 난맥은 우리가 미국을 모르기 때문에 생겼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대선 때부터 한미 FTA를 끔찍한 거래라고 했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올해 4월 한미 FTA를 리폼(reform)하겠다고 했지만 정부는 의미를 축소했다. 7월에는 ‘재협상이냐 개정협상이냐’라는 용어를 두고 논쟁했고, 8월 한미 간 첫 회의 때는 실태조사부터 하자고 제안했다. 만만디 전략이 먹힐 줄 알았지만 FTA 파기 검토라는 미국의 초강수에 떠밀려 협상을 개시하고 무기 구매에다 83조 원어치의 대미(對美) 투자 제의까지 하며 코너로 몰렸다.


재계의 반응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가르마를 잘못 탔다”는 것이다. 오른쪽으로 타야 할 가르마를 왼쪽으로 타면 뒤늦게 빗질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첫 단추를 잘못 채웠다가 계속 끌려다니는 상황에 대한 자조다.

통상은 상대방을 파악하는 것에서 시작하는데 이 기본이 망가졌다. 우리 통상팀이 누구에게서 정보를 얻는지 의문이다. 흔히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코리안 아메리칸을 우리 편이라고 보고 고급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믿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이들 중에 본토 미국인보다 더 미국의 이익에 충실한 사람이 적지 않다. 김 본부장과 통상팀이 개인적으로 아는 미국 내 인사가 있다지만 통상정책의 큰 흐름을 짚어내기는 어려워 보인다. 트럼프가 정상회담에서 민감한 농축수산물과 자동차 분야를 건드리지 않았다고 안도한다면 근시안적이다. 이 문제는 수면 아래 있을 뿐 사라진 게 아니다. 언제까지 트럼프의 한마디에 천당과 지옥을 오갈 것인가.

트럼프 정부의 고립주의가 FTA 재협상 문제를 돌연변이처럼 만들어냈으니 시간을 끌면 상황이 저절로 우리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뀔 것이라고 봐온 측면이 있다. 그럴까. 미국의 역사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는 개방주의로 달려왔다. 고립주의로 보였던 1900년대 초반조차 실제로는 미국의 영역을 확장하는 제국주의에 가까웠다. 영국 저널리스트 폴 존슨은 ‘미국인들은 아시아에 개입하여 변화시키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이라고 여겼다’고까지 했다. 그뿐만 아니라 미국 정계와 산업계에서 자국의 대외무역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 것은 트럼프 이전이다. 트럼프가 아니라도 미국인 피에 흐르는 개방주의, 제국주의적 속성은 한국과 아시아를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재협상은 이 흐름 속에 있다.

미국은 자동차에 관심이 있는데 김 본부장은 “농업은 우리의 레드라인”이라며 엉뚱한 곳에 선을 그어 두었다. 국내 농민, 시민단체를 의식했을 것이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원래 관심이 덜했던 농업에 대해 봐주는 모양새를 취하며 자동차와 철강 시장을 개방하라고 압박할 수 있다. 김현종 팀은 국내 정치를 보지 말고 미국을 보고 협상하기 바란다.

홍수용 논설위원 legman@donga.com
#김광두#한미 자유무역협정#한미 fta#트럼프 정부#김현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