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철희]초현실적 레알 ‘김정은 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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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논설위원
이철희 논설위원
유발 하라리가 신작 ‘호모 데우스’에서 그린 인류의 미래는 무섭도록 기이하다. 인류사적 통찰을 토대로 논리적 상상력을 끝없이 밀어붙이는 도저한 사유의 힘에 감탄하다가도 그가 펼친 미래의 섬뜩한 풍경엔 등골이 서늘해진다. 솔직히 한국어판 서문부터 살펴보곤 이 책을 끝까지 읽어야 하나 망설였다. 하지만 어느덧 일독을 마치고 다시 읽은 서문 ‘다시, 한국의 독자들에게’는 한층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하라리가 먼저 제시한 북한의 미래는 사실 누구나 점치는 뻔한 시나리오다. 이미 정보기술에서 뒤떨어진 북한은 인공지능시대에 더욱 경제·군사적으로 약해지고 이웃 나라들을 공갈 협박하다 결국 붕괴할 것이라는…. 하지만 이어지는 그의 뻔하지 않은 시나리오는 무시무시하다.

하라리의 예언 ‘1984 북한’

가령 북한은 모든 차량이 자율주행하는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된다. 남한에서는 인간의 운전을 금지하면 자가용 소유주, 택시·버스기사, 심지어 교통경찰까지 들고일어날 테지만 북한에선 어느 날 김정은의 펜 놀림 한 번으로 모두 해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북한은 조지 오웰이 ‘1984’에서 그린 세계 최초의 전체주의적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 모든 주민에게 생체측정기기를 착용시켜 말과 행동, 생각까지 읽어내는 철저한 감시사회를 구현한다.

최근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6차 핵실험은 하라리식 예측이 그저 상상력 끝자락에서 나온 것만은 아니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더욱 어둡게 덧칠된 ‘김정은의 나라’는 하라리의 시나리오보다 더욱 기괴한 초현실 사회가 될 수 있다.

김정은은 최근 화학재료연구소와 핵무기연구소를 방문해 ‘주체탄’의 기술력을 전 세계에 자랑했다. 김정은이 가리키거나 배경 삼아 찍은 미사일과 핵탄두 사진은 전 세계 정보당국과 연구기관의 비상한 관심을 집중시켰다. 전문가들은 ‘뻥’과 ‘레알’ 사이의 논쟁 속에서 대체로 기가 차다는 반응을 내놓는다. 어떻게 저런 수준으로 그런 기술적 도약을 이뤄내는지 놀라울 따름이라는 것이다.

4년여 전 서해에서 건져 올린 장거리 로켓 은하3호의 잔해를 분석한 전문가들의 반응도 그랬다. 중국 등 5개국에서 수입한 부품들이 군데군데 섞인 로켓엔진·연료통의 배선과 용접 상태는 너무 조악해 어떻게 지구 궤도에 올렸는지 신기할 정도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깡통미사일이든, 깡통폭탄이든 태평양을 건널 만큼 높이 올랐고 한반도 북부를 흔들었다. 그것이 현실이다. 김정은이 결심하면 죽기 살기로 만들어내야만 하는 나라이기에 뻥은 레알이 된다.

‘멋진 核국가’가 폭주하면…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의 ‘핵-경제 병진노선’은 국가 브랜드가 됐다. 핵 보유로 안보 위협에서 벗어나야 경제 건설에 매진할 수 있다는 ‘핵개발 올인(다걸기)’ 노선이다. 김정은의 병진노선은 최근 좋아진 경제 사정으로 그 정당성이 입증됐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염원하는 ‘핵무력 완성 이후’ 김정은은 북한을 어디로 이끌까. 김정은이 얌전히 인민경제에 힘을 쏟지도 않겠지만 국제적 외톨이 신세여서 그럴 수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더욱 거침없이 폭주할 가능성이 높다. 이미 50년 전 할아버지 김일성의 ‘국방-경제 병진노선’이 북한 경제를 파탄 낸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하라리의 시나리오는 우리를 더욱 두렵게 만든다. 북한은 대외적으론 위협과 공갈, 가짜뉴스, 사이버 파괴·교란공작까지 결합한 ‘하이브리드 전쟁’의 무법자가 될 것이다. 대내적으론 어설픈 인공지능 기술로라도 북한을 빈틈없는 감시·통제의 ‘멋진 신세계’로 바꾸려 할 것이다. 이 모든 게 김정은의 삐딱한 날림체 서명이면 가능한 북한이기에.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유발 하라리#호모 데우스#북한#김정은#하라리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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