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배극인]정책 결정, 모 아니면 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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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극인 산업부장
배극인 산업부장
민간에서 일하다 과거 정권 고위직으로 적을 옮긴 A 씨에게 어느 날 뭐가 제일 달라졌는지 물어봤다. A 씨는 “아홉 번 실패해도 한 번 잘하면 박수받는 게 민간 부문이라면, 아홉 번 잘하고 한 번 잘못하면 잘리는 게 정부 부문이더라”라고 했다. 정책 결정에 그만큼 리스크가 크고 살펴야 할 일이 많다는 점을 알아 달라는 얘기였다. 신중함이 지나치면 복지부동으로 흐를 수 있다. 그렇지만 국민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한 번 잘못 밀어붙였다 발생하는 매몰 비용을 생각하면 A 씨 말대로 정부는 아무리 신중해도 지나치지 않다.

최저임금 인상 등 요즘 정부 정책 결정 과정을 보면서 딱 떠오르는 말은 ‘모 아니면 도’다. 정교함이 요구되는 중요 정책을 도박하듯 접근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걱정이다.

정통 경제학에서는 최저임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많다. 임금도 물가와 마찬가지로 시장의 수요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데, 시장 균형보다 높게 설정된 최저임금은 이보다 노동생산성이 낮은 사람들의 고용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한다는 이유에서다. 약자를 구제해 격차를 시정하겠다는 정책이 약자부터 해고해 오히려 격차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맨큐의 경제학’ 저자인 그레고리 맨큐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최저임금 상승이 젊은층과 미숙련 근로자의 실업률 증가로 연결된다는 데 경제학자 79%가 동의한다고 소개했다.(gregmankiw.blogspot.kr/2009/02/news-flash-economists-agree.html).

물론 노동시장을 완전경쟁으로 본 경제학의 전제가 틀렸다는 반론도 확산되고 있다. 노동시장은 사실 수요 독점이어서 균형 임금이 자동으로 맞춰질 수 없다는 것이다.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등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들은 최저임금 인상이 근로자의 인센티브를 강화하고 이직을 줄여 생산성을 높인다고 주장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경제자문위원장을 지낸 앨런 크루거 프린스턴대 교수도 그중 하나다. 다만 이들의 주장에 ‘적절한 또는 완만한 수준으로 인상될 때’라는 전제가 붙어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주요 국가들도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가까운 일본은 지역별, 산업별로 최저임금을 이원화해 운영하고 있다. 예컨대 지금 미야자키의 시간당 최저임금은 714엔으로 932엔인 도쿄의 77% 수준이다. 지역 경제 여건을 최대한 반영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살리고, 실업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우리 정부가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이 초래할 후폭풍을 얼마나 면밀히 검토했는지 의문이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은 엊그제 “(영세업자의) 폐업과 해고가 속출하면 계속 올릴 순 없다”고 했지만 국민은 ‘아니면 말고 식’ 정책 실험 대상이 아니다. 최저임금은 물론이고 통신비 인하, 원전 폐지 등 민감한 정책일수록 정교해야 한다. 기업 정책을 규모와 목적에 따라 세밀하게 접근하겠다는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돋보이는 이유다.

노무현 정권 초창기 때 일화다. 잘나가던 어느 경제부처 국장이 만난 자리에서 뜬금없이 골프 얘기를 꺼냈다. 요즘 관료들이 골프 티샷을 어떻게 하는지 아느냐는 것이었다. “무조건 페이드를 쳐야 해. 일단 볼이 왼쪽으로 날아가는 듯 보이지만 걸어가서 보면 페어웨이 정중앙에 떨어져 있어야 돼.” 그가 말한 티샷은 정책이었다. 좌파 코드에 맞춘 듯한 정책을 내놓지만 역사의 평가를 의식해 올바른 결과를 유도하고 있으니 정확히 봐달라는 암시였다. 문득 그가 생각나는 요즘이다.
 
배극인 산업부장 bae2150@donga.com
#최저임금 인상#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모 아니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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