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원의 오늘과 내일]‘살찐 고양이들’에게 맡긴 국회개혁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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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부국장
박성원 부국장
왜 하필 ‘살찐 고양이법’이라 했을까. 정의당 심상정 상임대표가 지난달 28일 기업이 임직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최고임금을 최저임금의 30배가 넘지 못하도록 하는 ‘최고임금법’ 제정안을 발의하면서 붙인 이름이다. ‘살찐 고양이’는 대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턱없이 과도한 기본급과 천문학적인 보너스, 퇴직금을 챙기면서 세제 혜택까지 누리는 월가의 탐욕스러운 경영진을 꼬집는 말이다. 심 대표는 앞으로 공공기관 임직원은 최저임금의 10배, 국회의원과 고위공직자는 5배가 넘는 임금을 받지 못하도록 만들자는 계획까지 밝혔다.

하지만 이런 법안을 국회의원들이 스스로 통과시킬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새누리당은 최근 의원 특권 내려놓기의 일환으로 월평균 78만4000원의 특별활동비를 전액 삭감하는 방안을 검토하다가 일부 의원의 반발에 부딪혀 없던 얘기로 했다. 새누리당은 대신 ‘세비 동결’안을 내놓는 것으로 생색을 냈다. 여야 3당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를 위해 의장 자문기구를 설치키로 하고 국회 사무처가 친인척 보좌진 채용 기준 등을 담은 ‘국회 윤리법규 개정안’을 이달 안에 마련할 것이라고 하지만 큰 기대를 걸기 어려운 이유다.

새누리당은 ‘방탄국회’에 악용돼 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불체포특권과 관련해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본회의에 보고된 지 72시간 내에 표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자동 폐기되는 법규정을 없애겠다고 했다. 하지만 회기 중 체포동의안은 여전히 국회의 가결이 있어야 집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헌법상 불체포특권은 폐기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정치권이 마치 불체포특권을 포기라도 하는 것처럼 생색을 내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

새누리당은 8촌 이내 친인척의 보좌진 채용 금지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설사 법안이 통과된다 해도 의원들이 서로 친인척을 바꿔 채용하는 ‘품앗이 채용’은 여전히 성행할 가능성이 높다. 국회의원 중에는 보좌진 월급 일부를 사실상 빼돌려서 지역구의 사무실 운영에 보태거나 지역을 관리하는 비공식 보좌진의 월급으로 지급하는 사람도 있다. 국회에서 월급이 나오는 보좌진 중 일부는 아예 국회에는 나타나지도 않고 지역구에 살다시피 하는 사람도 많다. 보좌진을 국회의원이 멋대로 임명하고 하루아침에 해고할 수 있는 제도를 뜯어고쳐서 자격요건을 갖춘 보좌진을 국회가 선발하고 상임위별 의원실에 전문가를 배치하는 방식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나랏돈으로 운영되는 보좌진 자리를 의원들의 친인척 일자리 대책용으로 써먹거나 보좌진 월급을 사실상 강탈해 국고를 횡령하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보좌진을 둘러싼 국회의원의 갑질과 일탈 행위보다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는 것은 예산 심의 과정에서 수백억 원씩 나랏돈을 지역구 선심용 ‘쪽지예산’으로 빼가는 것이다. 비용은 얼마나 들어갈지, 재원을 어떻게 조달할지도 제시하지 않은 채 포퓰리즘 법안을 내놓고 나라 경제를 어지럽히는 의원, 국정감사 증인으로 멀쩡한 기업인들을 줄줄이 불러놓고 질문도 안 하고 돌려보내는 식으로 괴롭히면서 후원금 같은 반대급부를 청구하는 의원도 있다. 게다가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 금지에 관한 법률)에서 공직자도 아닌 사립학교 교원, 언론인 등을 공권력에 의한 감시와 사찰 대상에 집어넣고도 정작 자신들은 ‘제3자 민원 전달’ 명목으로 부정청탁의 적용 대상에서 빼버리고, 이해충돌 방지조항은 아예 삭제해버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다. 이런 ‘여의도의 살찐 고양이들’이 스스로 목에 방울을 달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는가.

박성원 부국장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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