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경준]단원고 졸업생들을 맞으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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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준 사회부장
정경준 사회부장
5월 27일 새벽. 탱크를 앞세워 진압이 시작됐다. 총탄과 곤봉 세례에 생사를 함께하자던 동지들이 힘없이 쓰러졌다. 하나둘 투항하는 이들도 생겨났다. 열여덟 고3은 두려웠다. 결국 총을 버리고 도망쳤다. 부끄러웠다. 50대 중반이 된 그는 지금도 해마다 ‘그날’이 오면, 죽을 만큼 견디기 어려운 고통에 밤을 새운다.

강용주.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에 시민군으로 참여했다 정신적 외상을 입은 그의 시련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1985년 구미유학생간첩단 사건에 연루됐다. 모진 고문에도 끝내 전향을 거부한 ‘죗값’으로 14년을 복역해야 했다. 출소 후 학업을 마치고 의사가 된 그는 광주트라우마센터장을 맡아 부당한 공권력에 의한 피해자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고 있다.

그는 최근 세월호 참사 때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단원고 3학년 학생들을 찾아 아픔을 나눴다. “고통 속에서도 삶은 지속되는 거야. 자부심을 가져. 그것이 죽은 친구들에 대한 의무야.” 그렁그렁한 눈으로 “너희들 아프지? 나도 아파. 지금도…”라며 고통에 비틀거리면서도 일어서는 자신의 삶을 얘기할 때는 학생들의 눈시울도 촉촉해졌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 256명의 친구와 선생님들을 떠나보낸 단원고 3학년 학생 86명이 12일 졸업식을 갖는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심리학과, 간호학과, 물리치료학과를 많이 선택했다고 한다. 스스로 트라우마를 극복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졸업생들이 힘찬 생활을 시작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그렇지만 현실은 자꾸 이들의 아픈 기억을 건드린다. 학교 측은 당초 졸업식 때 숨진 학생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됐다. 생사가 확인되지 않은 고창석, 양승진 교사와 허다윤, 남현철, 박영인, 조은화 학생이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참사의 흔적을 지워 버리려는 명예졸업식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게 유족들의 의견이었다. 학생들이 쓰던 2학년 교실, 이른바 ‘4·16 기억교실’을 둘러싼 이견도 심각하다. 경기도교육청은 이제 희생자들의 추억이 깃든 집기는 별도의 추모공간으로 옮기고, 신입생들에게 교실을 물려줘 학교를 정상화하자고 했지만 유족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있다.

2016학년도 대입 수시전형에선 ‘단원고 특별전형’이 논란이 됐다. 단원고 특별전형은 정원 외 선발이기 때문에 다른 지원자들의 몫을 빼앗는 게 아니다. 또 대학 자체 기준에 못 미치면 불합격 처리되므로 무조건 합격도 아니다. 그런데도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는 특혜 시비, 자격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근본적인 문제는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아득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열린 청문회는 여당 추천위원들이 대거 불참하는 바람에 반쪽짜리가 됐고, 활동기한이 6개월밖에 남지 않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는 정쟁(政爭)과 이념 대립으로 헛바퀴를 돌 뿐이다.

김은지 단원고 스쿨닥터는 “세월호 참사 이후 불거진 갖가지 갈등으로 아이들이 불안함을 호소하고 있다”며 “가능하다면 졸업식만큼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치를 수 있게 해주고 싶다”고 했다.

강용주 센터장이 그렇듯, 단원고 졸업생들이 그렇듯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그날’이 가까워오면 분노, 우울, 초조에 시달리는 ‘기념일 반응’을 보인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고난이 닥쳤을 때 흔히들 되뇌는 이 경구(警句)가 위로가 될까. 오늘 대학으로, 사회로 첫발을 내딛는 단원고 학생들의 아픔은 우리 모두가 이들에게 눈높이를 맞추고 배려하지 않는다면 세월이 흐른다고 그냥 지나가지 않는다.

정경준 사회부장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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