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중현]맘마미아에 얽힌 斷想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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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현 경제부장
박중현 경제부장
“그런데 왜 그리스지?”

10여 년 전 미국 뉴욕에 출장 갔을 때 짬을 내서 본 뮤지컬이 맘마미아였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스웨덴 혼성 4인조 그룹 아바(ABBA)의 히트곡들을 극의 곳곳에 끼워 넣어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1970년대 말 전성기 때 아바 의상을 입고 등장한 주인공들이 벌이는 흥겨운 커튼콜 공연에 맞춰 박수를 치다가 이런 의문이 들었다.

영국인 극작가가 스토리를 짰지만 아바의 남성 멤버 비에른, 벤뉘 둘이 뮤지컬 제작을 주도했다. 이들이 고향인 북유럽이나 최대 뮤지컬 시장인 미국이 아니라 먼 남쪽 지중해의 그리스 섬마을을 배경으로 한 이유가 궁금했다.

유럽 재정위기가 계속되던 2012년에 외신기사를 읽다가 이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시 한 이탈리아 신문은 북유럽인과 남유럽인들 사이의 깊은 감정적 골을 설명하면서 세간에 떠돌던 농담을 전했다. “독일인은 이탈리아인을 사랑하지만 존경하지 않고, 이탈리아인은 독일인을 존경하지만 사랑하지 않는다.” 그리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에 복지지출 구조조정과 재정긴축을 요구하는 독일 및 북유럽 나라들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기사였다.

북유럽인들은 남쪽 사람들을 매력적이지만 지중해 햇볕 아래서 노닥거리길 좋아하는 베짱이쯤으로 생각하고, 남유럽인들은 북쪽 사람들을 정직하지만 일상에 얽매인 쩨쩨한 이들로 보기 때문에 서로 소통하기 어렵다는 내용도 곁들여져 있었다. 아바 멤버들이 뮤지컬의 배경을 그리스로 정할 때 이런 선입견이 어느 정도 작용했을 것 같다.

지난주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자진해서 총리 자리에서 물러났다. 다음 달 열릴 조기 총선에서 다시 집권할 가능성이 크지만 일단 채권단의 긴축 요구를 받아들인 뒤 발생한 국론 분열에 책임지기 위해서였다. 50일 전인 지난달 6일(현지 시간) 그리스 국민들은 집권 좌파연합 시리자의 당수인 치프라스 총리의 호소대로 긴축요구안에 반대하는 쪽으로 표를 던졌다. 광장에 몰려나와 폭죽을 터뜨리며 승리를 자축하던 그리스 청년들의 모습이 다음 날 전 세계 신문 1면에 실렸다. 사진 속 젊은이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할까.

작년에 그리스에서 독일로 이주한 사람들의 수는 3년 전보다 17.4% 늘었다. 일자리를 찾아 북쪽으로 떠나는 그리스 등 남유럽 젊은이들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맘마미아에 나오는 유쾌한 섬마을 젊은이들 대부분은 일하지도, 학교에 다니지도 않고 취업할 생각도 없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니트족’처럼 보인다.

먼 나라 일이 아니다. 올해 2분기(4∼6월) 한국의 전 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0.3%로 그리스(0.6%), 스페인(1.0%) 등 남유럽 국가들보다 낮았다. 보건사회연구원은 저성장 속에서 지금의 복지시스템을 유지하다간 20년 뒤인 2035년에 한국이 남유럽 국가와 같은 재정파탄을 겪을 것이라고 최근 경고했다. ‘괜찮은 일자리’의 대표격인 30대 그룹의 직원 수는 지난 1년간 0.8%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런데도 청년 일자리를 확보하기 위한 노동개혁은 야권과 상위 10% 근로자를 대변하는 노조의 거부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뮤지컬 끝부분에서 모텔을 운영하며 미혼모로 살던 도나는 20년 만에 딸 소피의 아빠와 재회해 결혼한다. 하지만 소피는 약혼자와 ‘아이 해브 어 드림(I have a dream)’을 부르며 고향을 떠난다. 그들이 찾으려고 떠나는 꿈은 일자리일 수 있다. 우리 자녀들이 꿈을 좇으려면 나라를 떠나야만 하는 날이 왔을 때 지금의 기성세대는 얼마나 많은 후회를 해야 할까.

박중현 경제부장 sanjuck@donga.com
#맘마미아#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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