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신연수]문재인의 변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신연수 논설위원
신연수 논설위원
“다시는 1∼2%가 모자라 눈물 흘리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새정치민주연합 2·8전당대회 연설)

문재인 새정연 대표가 달라졌다. 야당 대표가 된 지 한 달여, 중도층을 향한 통합과 경제 행보가 활발하다. 이승만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역을 참배했고 “유능한 경제정당을 만들겠다”는 약속도 했다. 이참에 보수 여당의 어젠다였던 성장, 아니 경제 자체를 야당의 어젠다로 가져오겠다는 의욕이 엿보인다.

성장률과 국민의 체감경기가 따로 노는 시대에 경제는 충분히 진보 야당의 어젠다가 될 수 있다. 더구나 이제 경제성장은 수출 대기업을 넘어 소비를 바탕으로 한 내수와 중소기업으로 확장돼야 한다.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도 소득 불평등을 완화해야 지속가능한 성장을 할 수 있다고 권고하는 판이다.

이를 위해 야당이 내세우는 것이 ‘소득 주도 성장’이다. 가계의 가처분소득을 늘려 기업 투자와 일자리 창출을 이끈다는 구상이다. 대기업과 부자에 대한 증세, 교육 의료 복지 안전 환경 등 사회서비스 확대를 통한 일자리 창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경제성장의 목적인 ‘인간다운 삶’과 공동체 회복을 위해서도 어느 정도 이런 정책들이 필요하다. 그러나 말이 쉽지, 실천은 어렵다. 경제적 약자에게 혜택이 가도록 제도를 바꾸는 일엔 반발과 진통이 따른다. 중국이 좋은 예다. 중국은 수출에서 내수 경제로 바꾸기 위해 최저임금을 2009년 이후 연평균 14.4%씩 올렸다. 임금을 감당 못한 기업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성장률이 10%대에서 7%대로 내려앉았지만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정부는 흔들리지 않았다. 한국의 허약한(?) 민주주의 정부는 구조개혁이 더 어려울 것이다.

분배를 잘한다고 미래 먹을거리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선진국과 중국 사이에 샌드위치 된 한국 산업의 활로는 어디에 있는지, 한국에는 왜 구글 테슬라 알리바바 같은 기업이 나오지 않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정말로 유능한 경제정당이 되려면 이런 문제들에 대한 복안을 갖고 있어야 한다.

문 대표가 2011년에 쓴 책 ‘운명’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하자 김&장을 비롯한 유명 로펌들에서 스카우트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국제변호사나 기업전문 변호사, 뭔가 고급스러워 보여서 오히려 내키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대신에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인권변호사의 길을 걷는다. 그의 인간적 면모와 함께 한계를 보여주는 일화다.

엄혹한 군사독재 시절, 노동조합만 결성해도 빨갱이로 몰리던 시기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노동자와 대학생들을 변론한 것은 대단한 일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노무현 문재인 같은 정의감 강한 행동가들에게 빚을 졌다. ‘정치는 어려운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는 점에서 그가 정치인이 된 건 자신의 말처럼 운명인지 모른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야박하게 들리겠지만 사람은 과거의 빚 때문에 미래까지 투자하진 않는다. 국가 경영자가 되려면 노동자 입장뿐 아니라 기업가 입장에서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인권변호사도 필요하지만 국제변호사와 기업변호사도 많이 필요한 시대다.

문 대표는 보다 미래 지향적이고 글로벌한 비전,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해 합의를 끌어낼 수 있는 안정된 경제운용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민주주의,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 낸다면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는 대표 수락 연설처럼 뜬금없는 투쟁 선언은 더 이상 곤란하다. 툭하면 1970년대식 공안 정국을 만들려는 정부 여당도 지겹지만 1980년대 민주 투사의 귀환도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문재인#새정치민주연합#경제성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