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신동진]보안취약 알면서도 중국산 설치한 정부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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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진·산업부
신동진·산업부
‘이렇게 허술한 방법으로 뚫릴까.’

처음 중국산 IP카메라를 해킹하는 유튜브 동영상을 봤을 때 해킹은 먼 나라 얘기라고 여겼다. 가정집과 탈의실에 설치된 IP카메라로 사생활을 훔쳐본 일당이 검거됐다는 기사를 접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반신반의했지만 유튜브에 나온 대로 따라해 봤다. IP카메라의 인터넷주소(IP주소)를 찾아내는 사물인터넷(IoT) 검색엔진과 비밀번호 변경 프로그램은 누구나 내려받을 수 있었다. 주소 창에 해킹 명령어를 넣으니 누군가 이미 해킹했다는 ‘HACKED’ 메시지와 실시간 화면이 바로 떠올랐다. 카메라는 놀이터를 비추고 있었고 유치원생 대여섯 명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고 있었다.

검색엔진에는 기자가 있는 곳에서 300여 km 떨어진 놀이터 위치까지 지도로 표시됐다. 아찔했다. 사이코패스가 공공장소에서 아이 신체 부위를 몰래 찍거나 아이를 유인하는 내용의 소설(마이클 코넬리의 ‘시인’)이 떠올랐다.

중국산 IP카메라는 아이 안전만 위협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 취재 과정에서 유사시 절대 뚫리면 안 되는 국가 중요시설도 이 카메라를 설치한 곳이 적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정부가 중국산 제품의 보안 취약점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점은 더 놀라웠다. 정부과천청사 입찰 시 비슷한 우려가 제기됐지만 ‘성능 규격에 맞다’는 이유로 묵살됐다고 한다. 국가정보원이 발전소 등에 설치된 중국산 IP카메라 현황을 뒤늦게 파악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지난달 국정감사에서 한 의원은 “마음만 먹으면 공공기관 기밀사항이 유출될 수 있다”며 IP카메라 해킹 보완책을 촉구했다. 하지만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이를 사생활 유출 우려로만 이해한 듯 몰래카메라 대책을 언급했다. 공공부문 보안 의식이 안이한 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분위기는 최근 경찰의 해킹 사건 처리 과정에서도 감지된다. 4000대의 IP카메라가 해킹으로 털렸지만 경찰은 이 제품들이 “저가의 외국산”이라고만 했다. 기자가 계속 추궁하자 “대부분 중국산”이라고 털어놨다. ‘문제 제품을 알아야 나머지 국민들도 대비를 할 것 아니냐’고 따졌지만 “민감한 영역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다.

본보 보도(6일자 A1·2면) 후 한국첨단안전산업협회는 국산 제품 성능 인증을 추진해 국산 보급에 나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4차산업혁명위원회도 저가의 외국산 IP카메라 문제점을 들여다볼 것이라고 한다. 만시지탄이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우리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와 공공기관 안전은 비용 절감 대상이 아니다.

신동진 기자 shine@donga.com
#정부#해킹#중국산#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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