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배중]‘촛불 청구서’ 내밀 주인은 민노총 아닌 국민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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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증 부르며 정부에 대가 요구… 시민들 “이기적인 사람들” 비판
일방적 떼쓰기, 민심이 좌시 않을것

김배중·사회부
김배중·사회부
21일 오후 청와대 사랑채 측면 인도에 검은색 그늘막이 들어섰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산하 투쟁사업장공동투쟁위원회(공투위)가 집회용으로 설치한 것이다. 이곳은 ‘청와대 100m 앞’. 촛불집회 당시 주최 측이 이곳까지 행진하려다 경찰이 불허한 곳이다. 22일 오전 종로구청은 시민 불편을 초래한다며 이를 철거했다. 이 과정에서 양측은 몸싸움도 벌였다. 하지만 공투위는 이날 종로구청을 방문해 그늘막을 돌려받았다. 청와대 100m 앞에 다시 설치하겠다는 것이다.

‘그늘막 투쟁’은 요즘 민노총 등 노동계의 위세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21일 세종문화회관 옆에서 열린 기자회견장에선 “촛불투쟁의 수혜를 입어 당선된 문재인에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이 나왔다. 요구사항은 최저임금 1만 원 관철. 이날 건설노조는 이례적으로 평일 출근시간대 거리행진을 하면서 “서울 교통을 마비시키겠다”고 소리 높였다. 민노총 지도부의 언사는 더욱 거침없다. 최종진 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은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70만∼80만 조직을 갖춘 민노총 없이 어떻게 촛불혁명이 이뤄질 수 있었겠나”고 말했다.

현직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집회의 성공 배경에 노동계 기여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인원 1700만 명이 만들어 낸 촛불의 힘을 과연 노동계 조직력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최근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이현우 교수 등이 진행한 촛불집회 참가자 분석은 이를 잘 설명해준다. 지난해 11월 26일 5차 촛불집회에 참가한 205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자의 80%는 ‘뉴스를 접하고 스스로 판단해 참가했다’고 답했다. 촛불의 주체는 평범한 시민이라는 사실이다.

촛불을 계승한 주역이라며 30일 사회적 총파업을 예고한 민노총에 진짜 촛불의 주인들은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촛불집회에 10회 이상 참여했다는 대학생 김모 씨(25·여)는 “민노총은 공식적으로 정의당·민중연합당을 지지한다고 했다가 이제 와서 무슨 촛불 청구서 타령이냐”고 반문했다. 21일 건설노조 거리행진 현장에서 시민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출근길을 가로막는 이기적인 사람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달 말까지 노동계가 주축이 된 대규모 집회가 이어질 예정이다. 최근 노동계 분위기를 지켜본 이들은 집회 규모나 양상에 대한 우려가 크다. 만약 노동계가 계속해서 청구서를 들이밀고 떼쓰기를 그치지 않으면 ‘촛불 민심’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다. 촛불의 주인은 국민이기 때문이다.

김배중·사회부 wanted@donga.com
#촛불#민노총#국민#청와대#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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