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서형석]첨단 재난경보시스템 만들어놔도 못쓰다니…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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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형석·사회부
서형석·사회부
5일 오후 11시 16분 전남 구례군에 규모 3.0의 지진이 발생했다. 약 2분 후 전남북은 물론이고 부산과 울산 경남 지역에 휴대전화 긴급재난문자가 발송됐다. ‘지진 발생, 여진 등 안전에 주의바랍니다.’ 늑장 발송으로 문제가 됐던 지난해 ‘9·12 경주 지진’을 계기로 최초 관측기관인 기상청이 직접 재난문자를 발송토록 바뀐 덕분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재난경보체계의 실상은 하루도 안 돼 민낯을 드러냈다. 6일 강원 동해안 일대에 발생한 대형 산불로 주민과 관광객 등 수십만 명이 공포에 떨었지만 이 지역에서는 단 한 명도 재난문자를 받지 못했다. 국민안전처와 산림청, 강원도, 강릉시 등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기관 중 단 한 곳도 문자발송 버튼을 누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주민과 관광객들은 뉴스 속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정보를 확인하며 각자도생(各自圖生)했다.

시스템은 잘못된 것이 없다. 국내 재난문자 시스템은 기지국 기반의 문자전송 기술(CBS·Cell Broadcasting Service)을 활용한다. 읍면동까지 발송 대상지를 골라 해당 지역 기지국을 경유하는 모든 휴대전화(CBS 기능이 탑재된 경우)에 재난문자를 보낼 수 있다. 3G(WCDMA)나 4G(LTE) 통신망을 쓰는 휴대전화(약 5800만 대)면 문제없다.

동해안 산불 때 이런 첨단 시스템이 제구실을 못한 건 결국 사람 탓이다. 안전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지만 정작 운용하는 사람들의 안전의식은 더디게 바뀌었다. 산불이 발생하면 산림청은 물론이고 해당 지방자치단체도 재난문자를 발송할 수 있다. 새로 생긴 규정도 아니다. 2008년에 이미 만들어졌다. 그러나 지자체는 허둥대다 손에 쥔 권한조차 제대로 쓰지 못했다. 안전처와 산림청이라도 적극 나서야 했지만 뒷짐을 지고 있었다. 결국 국민들은 밤늦게까지 공포에 떨며 SNS에서 산불 정보를 찾아야 했다.

일본은 태풍과 해일, 지진 등의 재해경보는 기상청이 전담한다. 전쟁 등으로 인한 피란 경보는 중앙정부와 각 지자체가 맡고 있다. 해당 기관들은 재난 발생 때 책임 소재를 가릴 것 없이 즉각 반응한다. 지난해 구마모토(熊本) 지진 때 일본 기상청이 3.7초 만에 경보를 발령한 것이 단적인 예다. 한국과 일본 모두 기본적인 문자경보 체계는 다르지 않다. 산불도 지진처럼 위험성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시스템이 필요하다.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
#재난경보시스템#산불#재난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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