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동혁]‘정치권 낙인찍기’ 따라하는 지성의 전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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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생들 유리깨고 본관 재점거
커뮤니티에 폭력 경계 글 올라오자 “개돼지의 나라” 감정싸움 번져
학내 구성원간 소통 노력 안보여

김동혁·사회부
김동혁·사회부
2m 높이의 사다리가 본관 현관문 앞에 놓였다. 한 학생이 사다리에 올라 망치로 2층 유리창을 내려쳤다. 총학생회 소속 학생 10여 명이 깨진 창문 사이로 들어갔다. 1일 오후 8시, 서울 관악구 서울대에서 벌어진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10일부터 153일간 대학본부를 점거 농성한 학생들이 다시 점거에 들어갔다. 이들은 시흥캠퍼스 조성 실시협약 전면 철회에 성낙인 총장 퇴진까지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학내 여론은 총학생회 측에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어떤 이유에서건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논리에 힘이 실린다. 3월 11일 점거 농성한 학생들을 학교 측이 강제로 끌어냈을 때는 같은 논리로 성 총장과 학교 측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컸다.

총학생회 측은 “지난달 27일부터 본관 1층에서 진행한 연좌농성이 총장과의 마지막 대화 기회였다”며 “다시 학생들을 강제로 몰아내는 것을 보고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날 재점거 직전까지도 학교 측에 일방적 통보와 물리력 행사 대신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열어 달라고 했다. 일부 학생은 대치하는 교직원을 향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불통과 다를 바가 뭐냐”고 소리치기도 했다.

하지만 폭력 점거가 불통에 대한 저항으로 정당화되진 않는다. 게다가 점거 진행 과정에도 모순이 많다. 총학생회는 본관 재점거 안건이 부결되자 재투표를 강행해 의결했다. 게다가 결과를 일반 학생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총학생회 관계자는 “학교 측에 미리 정보가 새어나가는 걸 우려했다”고 해명했다. 이들이 그토록 비판한 학교 측의 행태와 다를 바 없었다.

총학생회에 동조하는 학생들은 2일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 ‘스누라이프’에 재점거 방식의 폭력성을 경계하는 글이 올라오자 ‘여기가 개돼지들의 나라임이 분명하다’는 등의 댓글로 비난하기도 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적(敵)’이라는 태도에서 학생들이 경멸하는 정치권의 ‘낙인찍기’도 엿보였다.

총학생회는 줄곧 시흥캠퍼스 철회만을 고수했다. 동조했던 학생 일부가 “대화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총학생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이날 성 총장은 본관을 재점거한 학생 10여 명을 기물손괴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발했다. 총학생회가 들었던 망치가 부른 결과다. 결국 학교와 학생 모두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로 남게 됐다. 대학의 주인은 학교만도, 학생만도 아니다.

김동혁·사회부 hack@donga.com
#서울대#대학본부#점거 종성#스누라이프#시흥캠퍼스#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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