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우경임]‘존엄한 이별’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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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0일 세브란스병원에서 78세 김모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다. 폐암 검사를 받다 회복 불능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 상태가 된 지 거의 2년 만이었고, 대법원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 판결을 받은 뒤 201일 만이었다. 이를 계기로 촉발된 존엄사 논의는 지난해 2월 연명의료결정법(존엄사법)으로 결실을 맺었다.

▷우리나라는 소극적 의미의 존엄사만 허용한다.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항암제, 인공호흡기 착용 등 연명치료를 하지 않는 것이다. 약물의 도움을 받는 적극적 의미의 안락사와는 다르다. 지난 1년 동안 연명치료를 유보하거나 중단한 환자가 3만5839명,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는 11만4147명이다. ‘죽을 권리’를 선택하고자 하는 사람이 늘었으나 죽음이란 단어 자체를 금기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족끼리 이를 대놓고 이야기하기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죽는 게 어둡고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다. 이 세상 즐겁게 살다가 이제 당신들과 작별할 때가 왔다. 그동안 날 사랑해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싶다.’ 얼마 전 가까운 가족과 친구를 초대해 축제 같은 생전장례식을 연 암환자 김병국 씨(86)가 쓴 글이다. 모든 생명의 끝자락에는 소멸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 죽음을 당당히 마주할 때 삶은 더 찬란해진다.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해지는 것은 덤이다.

▷네덜란드 ‘앰뷸런스 소원재단’은 죽음을 앞둔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죽음이 묻습니다. 만약 당신이 내일 죽는다면, 오늘 무엇을 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은 이들의 소원은 하나같이 소박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 고향에 가 보기, 손자와 놀러가기 등….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은 이들의 소망, 그건 특별하고 화려한 추억의 재현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가장 간절하고 그리운 순간은 우리가 무심하게 보내는 일상이었다. 명절을 보내고 일상으로 복귀하는 소회야 모두 다를 테지만, 새삼 기억해야겠다. 가족들과 함께 보낸 그 시간들이 훗날 우리가 가장 돌아가고 싶은 삶의 한 순간이 될 것임을.

우경임 논설위원 woohaha@donga.com
#존엄사#연명치료 중단#앰뷸런스 소원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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