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민동용]연명의료 결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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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오감에서 마지막까지 남는 것이 청각과 촉각이다. 임종기(臨終期)에 접어들어 의식이 흐릿해도 인공호흡기를 붙일 때 아픔을 느낀다고 한다. 기도에 플라스틱 관을 넣는 삽관은 고통이 극심해 정신적 충격까지 받을 수 있다. 몇 년 전 뉴질랜드의 79세 할머니는 가슴에 ‘Do Not Resuscitate’(소생시키지 말라)라는 문신을 새겼다. 의식을 잃었을 때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삽입 같은 연명의료로 고통을 연장하지 말라는 의미였다.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세상에 알린 건 1975년 미국 뉴저지의 21세 여성 캐런 퀸란 사건이었다. 급성 약물중독으로 뇌 기능이 멈추자 그의 부모는 딸의 생명 유지 장치를 떼어달라고 병원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1심은 기각했지만 대법원은 인정했다. 퀸란은 인공호흡기를 떼고 9년을 더 살았다. 회생 가능성은 없다지만 온갖 기기를 주렁주렁 매단 채 가족들과 함께 있지도 못하는 중환자실에서 생을 마감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싶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통증과 가족의 심적 고통을 덜어주는 의료 시스템을 비교 평가하는 지표로 ‘죽음의 질(質)’이 있다. 한국은 2010년 40개국 중 32위에서 2015년 80개국 중 18위로 나아졌다. 그러나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제도가 더 나은 의료 정책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가 순위를 높였을 뿐 호스피스 등 완화의료 시스템이나 환자 통증을 낮춰주는 마약성 진통제 사용 등은 한참 밑이었다. 생명 연장에만 급급해 환자가 뒷전이 된 셈이다.

▷환자의 결정이나 가족 동의로 연명의료를 안 받아도 되도록 2월 시행된 연명의료결정법이 개정됐다. 환자의 의사를 확인할 수 없을 때 19세 이상 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 전원의 서명이 필요했는데 내년 3월부터 손자, 손녀 동의는 없어도 된다. 그렇다고 환자의 생명 의지를 외면해서는 안 될 일이다. 말기 암이지만 연명의료를 중단하고 따뜻한 ‘생전 장례식’을 치른 85세 김병국 씨는 “나는 삶을 포기한 적이 없다. 내 삶을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하고 싶을 뿐”이라고 했다. 삶의 마지막을 어떻게 맞을지 생각해 보게 된다.
 
민동용 논설위원 mindy@donga.com
#연명의료#심폐소생술#임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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