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세진]도청과 ‘차이나 포비아’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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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흔히 수박에 비유된다. 겉은 녹색이지만 속은 붉은 사회주의 이념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중국 내 기업도 마찬가지. 현대자동차가 베이징기차와 합작한 베이징현대에는 중방(中方)으로 불리는 공산당 소속 관리자들이 있다. 한국 측 주재원인 한방(韓方)이 현대차 본사 지시를 받는다면 중방은 공산당 결정에 따른다. 수익 극대화가 이들의 평시 목표지만 공산당이 정치적 이유로 다른 결정을 할 수도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의 여파로 현대차 판매가 급감한 것은 이런 중방들이 베이징현대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 아니냐는 의구심도 적지 않았다.

▷중국 인민해방군 정보장교 출신인 런정페이가 설립한 화웨이는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전 세계 1위 통신장비 업체다. 하지만 미국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의 스파이 활동에 언제든 이용될 수 있다고 보고 이 회사 제품 도입을 금지한다. 중국 정부 요청에 따라 도청이 가능한 ‘백도어’(해킹 프로그램)를 통신장비에 숨겨놓을 수 있다는 것. 화웨이가 만들어 미국으로 수출한 스마트폰에서 2016년에 도청용 해킹 프로그램이 발견된 적도 있다.

▷SK텔레콤이 5세대(5G) 통신망 장비 선정에서 화웨이를 제외한다고 14일 발표했다. 화웨이의 기술 수준은 경쟁사보다 1개 분기 이상 앞서 있고 장비 가격은 30% 이상 싸다. 요금 경쟁에 나서야 하는 통신사로서 쉽지 않은 선택이다. 그럼에도 미국에 이어 호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에서 보안 문제로 중국산 5G 장비 도입을 금지하는 ‘차이나 포비아’가 확산되자 수익성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SK텔레콤의 선택으로 화웨이는 약 20조 원의 국내 5G 장비 시장을 놓칠 수 있다. 5G망 첫 도입국인 한국에서 배제되면 다른 나라 수주가 쉽지 않을 것이다. 화웨이의 이런 위기는 중국 정부의 고민이기도 하다. 거대한 내수시장에 ‘죽의 장막’을 치고 글로벌 기업의 침투를 막아왔다. 이렇게 성장한 테크 기업들은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전 세계는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본다. 글로벌 기업마저 공산당 통제 아래 있다는 의혹을 해소하지 못하면 중국 경제의 미래가 장밋빛일 수만은 없다.
 
정세진 논설위원 mint4a@donga.com
#중국#화웨이#차이나 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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