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철희]기무사 해편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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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무가 떴다, 하면 사무실엔 일순 정적이 흐르고 이내 부산스러워진다. 책상 위 서류들이 날렵하게 치워지고, 책임자는 주섬주섬 자리에서 일어난다. “난 보고하러 가야 해서….” 자신보다 훨씬 아래 계급인 기무요원의 눈길을 애써 외면하는 그 책임자의 평소 지론은 이랬다. “×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하지.” 군에서 기무는 그만큼 불편하고 거슬리는 존재다.

▷국방장관에게도 예외는 아니다. 현역 대령이 국회의원들 앞에서 장관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진풍경이 벌어진 것도 그가 국군기무사령부의 100기무부대장, 즉 장관 감시역이 아니었으면 가능했을지 싶다. 100기무부대는 국방부 청사 1층 꽤 좋은 위치에 있다. 부대장 방은 차관보급 사무실 수준의 넉넉한 크기다. 그 바로 위 2층에 장관실이 있다. 옛 청사 시절엔 장관실과 같은 2층의 맞은편 쪽에 있었다. 아무리 군의 수장이라도 자신 가까이 있으면서 언제든 청와대에 직보하는 그곳에 신경이 쓰이지 않을 리 없다.

▷기무사의 새 이름이 ‘군사안보지원사령부’로 정해졌다. 보안·방첩을 주 임무로 하는 정보부대의 명칭이 왠지 어색한 것은 그 자랑스럽지 못한 역사 때문일 것이다. 기무사의 모체는 1948년 만들어진 국방경비대 육군정보처 특별조사과였다. 이후 특별조사대, 방첩대, 특무부대, 방첩부대라는 이름으로 이어지다가 1968년 육군보안사령부로, 1977년엔 국군보안사령부로 확대됐다. 보안사는 12·12쿠데타의 주축 역할을 했고 그 결과 대통령을 두 명이나 배출했다. 하지만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폭로 파장으로 1991년 기무사로 바뀌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여름휴가 중 ‘기무사 해편(解編)’을 지시했다. 해체 후 재편한다는 생소한 용어까지 사용했지만, 기무사개혁위원회가 건의한 3가지 방안(사령부 체제 유지, 국방부 산하로 흡수, 외청 형태로 창설) 중 첫 번째인 사령부 존치를 선택한 것이다. 조직 이름이 바뀌고 대대적 물갈이가 이뤄져도 그 직무는 크게 변하지 않을 것임을 예고한 대목이다. 결국 통수권 행사를 위해선 군 내부에 대통령의 눈귀가 필요하다는 판단이었을까.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
#기무사#군사안보지원사령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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