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길진균]탁현민의 ‘사라질 자유’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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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여름.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히말라야 트레킹을 떠났다. 대선 출마를 염두에 둔 일종의 출정식이었을 터다. 그때 동행한 사람이 양정철 전 대통령홍보기획비서관과 탁현민 현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도중에 합류한 김정숙 여사는 탁 행정관과 장을 보고 음식을 준비했다. 그래선지 두 사람은 대통령 내외와 허물없이 대화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들로 꼽힌다.

▷최고경영자 등 리더의 정체성과 이미지를 관리하는 것을 PI(President Identity)라고 한다. 한국에서 PI가 정부로 확산된 것은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5년이다. 노 전 대통령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자산으로 삼은 문 대통령과 참모진은 이를 적극 활용했다. 문 대통령을 이야기가 있는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만든 책 ‘운명’의 2012년 북 콘서트 중심에 탁 행정관이 있었다. 2년 차 대통령이 70% 안팎의 높은 지지율을 이어가는 배경에는 PI도 한몫하고 있다는 평이다.

▷탁 행정관은 대통령 PI팀의 핵심이다. 전문가들은 리더에게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숨겨진 장점을 부각시키는 작업이 PI의 요체라고 말한다. 리더의 성품은 물론 발성과 언어 습관까지 파악해야 가능하다. 대통령과의 거리가 그래서 중요하다. 이명박 박근혜 청와대 역시 PI팀을 가동했지만 성공적이진 못했다. 그러나 탁 행정관은 “처음 성관계한 여중생을 친구들과 공유했다” 등 왜곡된 성 인식을 드러낸 저서 내용이 알려지면서 사퇴 압박을 받기 시작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탁 행정관의 청와대 입성과 관련해 “제주에 피신(?)까지 하면서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그에게, ‘당선만 시켰다고 끝이 아니다’라며 잡았다”고 했다. 그렇게 매달린 탁 행정관이 지난달 29일 공개적으로 사의를 표명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잊혀질 영광’ ‘사라질 자유’를 거론하면서. 하지만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은 “첫눈이 오면 놓아주겠다”며 간곡히 만류했다고 한다. 여성 비하 발언 등으로 일찌감치 문재인 정부의 약점으로 거론된 탁 행정관, 청와대는 아직까지 그를 놓을 준비가 돼 있지 않나 보다.
 
길진균 논설위원 leon@donga.com
#문재인 대통령#탁현민#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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