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이기홍]反인권적 ‘추방’ 청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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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대통령은 트럼프 당선인에게 멋진 취임 선물을 할 기회를 갖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직전인 지난해 1월 미 중앙정보국(CIA) 전 부국장 마이클 모렐의 말이다. 그가 말한 취임 선물은 2013년 미 국가안보국(NSA)의 개인정보 수집 실태를 폭로하고 해외에 은신하다 러시아에 망명한 에드워드 스노든을 넘겨주는 것. 본국에 송환되면 징역 20년형을 받을 수 있는 내부 고발자를 취임 선물로 넘겨준다는 발상에 다들 경악했다. 하지만 실제로 러시아 정보당국은 트럼프에게 ‘선심’을 베푸는 방안 중 하나로 스노든 인도를 고려하고 있다고 미 NBC방송은 전했다.

▷그러자 스노든은 “어떤 나라도 스파이를 거래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남은 스파이들이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임을 알게 되기 때문”이라고 트위터에 썼고 실제로 송환은 없었다. 망명자를 본국에 강제 송환하는 것은 중국의 탈북자 송환 사례들을 제외하면 현대사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비인도적 처사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 추방을 요구하는 청원이 여러 건 올라왔다. 북한이 16일 새벽 남북 고위급 회담 연기를 통보하면서 태 전 공사를 겨냥한 비난 공세를 퍼부은 직후다. 청원 주장 중엔 “북한에서 부와 영화를 누리며 살다 지은 죄로 나라를 버리고 탈북한 매국노 같은 인간” 등 허위 사실과 인신모독적인 내용들이 적지 않다. 그러자 추방에 반대하는 청원들도 올라오기 시작해 어제 오후까지 48건의 찬반 청원이 제기됐다.

▷물론 태 전 공사 추방 청원 참여자는 많지 않다.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대한민국을 찾아온 이들을 추방하라는 발상 자체가 국민들로부터 전혀 호응을 받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청원으로 접수되는 사실 자체가 탈북자들에게는 불안감을 안겨 줄 수 있다. 네이버 아이디는 물론이고 실명 확인이 필요 없는 트위터, 페이스북 아이디만 갖고도 청원을 올리거나 지지 참여를 할 수 있는 청원 시스템의 허점을 불순한 의도를 가진 세력이 악용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
 
이기홍 논설위원 sechepa@donga.com


#청와대#국민청원#태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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