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한국계 드리머의 운명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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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 안토니오 바르가스는 2007년 조승희 총기난사 취재로 퓰리처상을 받은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이다. 필리핀에서 태어나 미국에 온 것은 열두 살 때인 1993년. 이혼 후 홀로 키운 아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사하고 싶은 엄마의 결단으로 외할아버지와 살게 됐다. 낯선 환경에 잘 적응한 바르가스는 16세 때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듣는다.

▷영주권을 들고 운전면허증을 신청하러 갔던 그에게 공무원이 작은 소리로 일러줬다. “이건 가짜야. 다시는 여기 오지 마.” 집에서 이를 재차 확인한 그는 불법체류자임을 들키지 않으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다. 2011년 자신의 과거를 고백한 글을 뉴욕타임스 매거진에 발표해 엄청난 화제를 모으곤 지금은 이민법 문제 시민운동가로 뛰고 있다.

▷앞으로는 이런 극적인 사연도 원천 봉쇄될 듯하다.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12년 버락 오바마 당시 대통령이 도입한 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DACA)의 폐기를 선언했다. DACA란 부모와 함께 불법 입국해 학교에 다니거나 취업한 이들의 체류를 허용한 행정명령. 오바마가 당초 도입하려고 했던 드림법(DREAM·Development, Relief, and Education for Alien Minors Act)의 취지대로 추방의 불안에서 벗어나 ‘아메리칸 드림’을 꿈꾼다는 뜻에서 ‘드리머’라 불리는 이들이 약 80만 명이다. 트럼프는 대체법안 마련에 6개월의 시한을 주며 의회에 공을 떠넘겼다.

▷오바마는 “어린 시절, 심지어 갓난아기 때 이 나라에 온 드리머들은 서류만 제외하고는 모든 방식에서 미국인”이라며 비판했다. 애플 등 정보기술(IT) 기업 최고경영자들도 폐기 반대에 한목소리를 냈다. DACA 폐기가 경제에 2000억 달러 넘는 손실을 끼친다는 분석도 나왔다. 한인 사회도 동요하고 있다. 중남미 5개국에 이어 한국 출신이 6위, 1만5000명으로 추정된다. 자신이 아는 유일한 조국에서 버림받는다면 온당치 못하다. 내가 사랑하는 나라가 나를 인정하지 않아 서글픈 드리머들, 반년 뒤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한국계 드리머#불법체류 청년 추방 유예 프로그램 폐지#추방의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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