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조수진]‘빅벤’의 종소리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8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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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서른 살의 젊은 화가 클로드 모네는 프랑스에서 런던으로 건너왔다. 그해 터진 보불(普佛·프로이센-프랑스)전쟁에 징집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빅토리아 여왕 시대 대영제국의 수도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화가가 특히 매료됐던 것은 회색빛 안개였다. 프랑스의 눈부신 햇살이나 신록과 다른 도회적 매력이었다.

▷1년 뒤 프랑스로 돌아온 모네는 이후 여러 차례 런던을 방문했다. 계절, 시간, 빛을 달리한 100점 가까운 ‘런던 연작(連作)’엔 템스강에 자리 잡은 웨스터민스터와 그 북쪽 끝 시계탑에 딸린 종(鐘) 빅벤(Big Ben)이 담겼다. 절대 왕정과 농업의 역사가 긴 프랑스의 화가에게 세계 최초의 의회와 산업화의 상징인 대형 시계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것 같다.

▷런던의 명물 빅벤은 1859년에 세워졌다. 건설 책임자 벤저민 홀의 큰 체구에서 유래한 이름에 걸맞게 무게가 13.7t이나 된다. 시침과 분침 길이만 해도 각각 2.7m, 4.3m. 엘리자베스 2세 즉위 60주년이었던 2012년 ‘엘리자베스 타워’로 공식 명칭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빅벤이 더 친숙하다. 우리나라 보신각처럼 빅벤이 ‘1월 1일 0시’를 장중하게 알리면 트래펄가 광장에 모인 영국인들은 ‘올드 랭 사인’을 합창하며 묵은해를 떠나보낸다. 1976년, 1997년, 2004년 조금씩 손을 보긴 했으나 15분마다 울리는 빅벤의 종소리는 여전했다.

▷그러나 158세 빅벤이 다음 달부터 4년간 구조물을 완전히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대대적인 수술에 들어간다. 잘못된 시간에 종을 울리는 등 노화가 심각해져서다. 예상 비용은 2900만 파운드(약 425억 원). 영국 의회관리처는 당초엔 인부들의 청력 보호를 위해 수리 기간 내내 종을 치지 않겠다고 했지만 “독일 공군도 하지 못한 일을 벌이려 한다”며 의회가 거세게 반발하자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200여 대의 전투기로 런던을 무차별 공습할 때도 멈춤 없이 영국민을 단합시켰던 빅벤의 종소리. 계속 울릴 수 있을까.

조수진 논설위원 jin0619@donga.com
#클로드 모네#런던 연작#빅벤#big 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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