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고철 폐기’ 대가로 ‘제재 풀라’ 고집해선 고립과 궁핍뿐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3월 2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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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용호 북한 외무상은 어제 새벽 기자회견을 자청해 자신들이 요구한 것은 대북제재의 전면 해제가 아니라 일부 해제였다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전면 제재 요구를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유로 들었지만, 자신들은 2016∼2017년 유엔 제재 결의 5건 중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항목만 먼저 해제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또 “미국 측이 영변 핵시설 폐기 외에 한 가지를 더 해야 한다고 끝까지 주장했다”고 했다.

북한의 주장은 결국 회담 결렬의 원인이 자신들이 아닌 미국의 과도한 요구 때문이라는 것인데 수긍하기 힘들다. 북한의 요구는 사실상 전면적 해제 요구와 다름없다. 2016년 북한의 잇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도발에 맞서 채택된 유엔 제재는 북한의 광물 수출을 금지하고 외화 수입을 근절하며 원유 정제유에 상한선을 부과하는 내용이다. 북한이 민생을 내세워 일부 해제만 요구한다지만 거기엔 사실상 대부분의 제재가 포함된다. 이들 제재를 풀어준다면 국제사회는 북한을 비핵화로 견인할 수단을 대부분 잃게 되고, 북한으로 유입되는 현금은 고스란히 핵개발 자금으로 사용될 수 있다.

게다가 북한이 제재 해제와 맞교환을 요구하며 내놓은 것은 핵시설 폐기에 국한됐다. 이미 보유한 핵탄두와 물질은 그대로 놔두고 추가 생산만 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이는 비핵화가 아니라 핵동결일 뿐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이 영변 폐기 외에 요구한 추가적 조치, 즉 비밀 핵시설에 대한 비핵화도 거부했다. 그러니 김정은의 비핵화 의지가 근본적으로 의심받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담판 결렬 후 방송 인터뷰에서 “나는 ‘진짜 (비핵화) 프로그램’ 없이는 제재를 포기하길 원치 않는다. 그들은 그(진짜 비핵화)에 대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핵동결, 그것도 영변의 용도 폐기된 고철덩어리 폭파 쇼에 김정은 정권의 돈줄을 풀어주는 ‘나쁜 거래’를 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하노이 담판의 결렬에도 불구하고 북-미 모두 상대에 대한 비난 공세를 일단 자제하면서 추가 협상을 기대하는 분위기라는 점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리용호는 어제 “우리의 원칙적 입장은 추호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했고, 최선희 부상은 “김정은 위원장이 조미 거래에 의욕을 잃지 않았는지”라며 은근한 협박도 내비쳤다. 북한이 이런 태도를 고집하면 협상의 동력을 되살리기는 더 어려워진다.

북한은 하노이에서 퇴짜 맞은 제안이야말로 국제사회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임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시간은 결코 북한 편이 아니다. 김정은이 진정 피폐한 인민의 삶을 걱정한다면 과감한 비핵화를 통해 제재 해제의 최소 요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그것 없이는 제재와 고립의 고통 속에 핵만 껴안은 채 구제불능의 불량국가로 살게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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