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첫 법관 탄핵촉구 의결, 길고 험한 진통의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1월 20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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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전국법관대표회의는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해 “징계 절차 외에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할 중대한 헌법위반 행위라는 데 인식을 같이한다”고 의결했다. 직접적인 탄핵 촉구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3권 분립에 반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표현을 완화한 결론이다. 그러나 6월 1차 법관대표회의 때 ‘형사 절차를 포함하는 진상조사’를 촉구해 검찰 수사로 이어지게 했듯이 사실상 탄핵 촉구를 결의한 것이다.

105명이 표결에 참가해 53명이 찬성했고 43명은 반대, 9명은 기권했다. 1표만 부족했다면 부결될 수도 있었던 극적인 결과였다. 반대 측은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기소 여부가 불확실한 상태라며 반대했고 찬성 측은 실추된 사법부 신뢰 회복을 위해 스스로 자정하려는 의지를 보여야 한다고 반박했다. 찬반의 어디에 섰든 간에 법관들은 탄핵 촉구가 가결될 수밖에 없었던 의미를 곰곰이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이번 탄핵 촉구는 정치권의 탄핵안 발의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대표법관들은 탄핵소추 대상 법관을 구체적으로 거명하진 않았다. 민변 등 시민단체로 구성된 ‘양승태 사법농단 대응 시국회의’가 이미 권순일 대법관 등 6명의 탄핵소추 명단을 공개한 바 있다. 법원 내부에는 탄핵소추에 반대하는 다수의 법관들이 존재한다. 검찰수사와 재판 결과가 맞물려 돌아가면 탄핵 대상 법관들이 추가될 수도 있다. 이 과정에서 누가 탄핵 대상에 추가돼야 할지 기준과 범위를 놓고 또 한 차례 법원 내부의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다.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재적 3분의 1 찬성)이 발의되면 재적 의원 과반수 동의로 가결되며 대통령 탄핵안과 마찬가지로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 찬성으로 최종 결정된다. 정치권의 논란도 불을 보듯 뻔하다. 사법권 남용 의혹에 대한 책임 추궁을 둘러싸고 기나긴 절차가 시작되는 것이다.

헌정 사상 판사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는 1985년 시국사건 재판으로 촉발된 ‘2차 사법파동’ 때의 유태흥 전 대법원장과 2009년 광우병 시위 재판 개입과 관련해 신영철 전 대법관을 겨냥한 두 사례가 있다. 유 전 대법원장의 경우 국회 표결 결과 부결됐고, 신 전 대법관은 여당의 표결 거부로 무산된 바 있다.

어제 검찰은 양승태 대법원에서 법원행정처장을 지내며 사법행정을 총괄했던 박병대 전 대법관을 처음으로 공개 소환했다. 엘리트 법관들의 일탈로 법원행정처가 로비 창구처럼 변질되는 바람에 검찰 강제수사에 이어 법관에 대한 탄핵 촉구까지 나온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마지막으로 기대는 언덕이 사법부다. 사법부가 끝을 알기 힘든 불신의 터널 속에 갇혀 있지만 공정한 재판에 대한 요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 역할은 결국 사법부가 감당해야 한다.
#법관 탄핵#박병대#양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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