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백남기 국가책임 先인정 後수사발표… 부끄러운 경찰의 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18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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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경찰 살수차 물대포에 맞아 숨진 백남기 씨 사건과 관련해 어제 구은수 당시 서울경찰청장, 시위 현장 지휘관이었던 신모 당시 서울경찰청 4기동단장, 살수차 운전요원이었던 최모·한모 경장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들이 사람의 가슴 윗부분을 향해 물대포를 직사해서는 안 된다는 살수차 운용지침을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검찰은 2010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디트리히 바그너 씨가 살수차 물대포에 맞아 왼쪽 눈을 실명한 사건에서 시 경찰청장 등 5명이 업무상 과실치상으로 경미한 법적 처벌을 받은 것을 유사 사례로 제시했다. 그러나 단순히 시위에만 참여한 바그너 씨 사례는 백 씨와 유사하다고 하기 어렵다. 많은 사람이 동영상을 통해 백 씨가 쓰러진 장면을 봤다. 경찰 물대포를 맞으면서도 밧줄을 잡고 차벽을 무너뜨리려 한 백 씨가 자초한 위험과, 물보라로 살수차 폐쇄회로(CC)TV의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살수차 운용지침을 지키지 못한 경찰의 책임에 대한 엄밀한 검토가 재판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

민중총궐기는 이를 주동한 한상균 전 민노총 위원장이 징역 3년을 선고받을 정도로 폭력 시위였다. 검찰도 폭력 시위를 막기 위한 경찰의 차벽 설치, 살수차 운영 자체는 불법이 없었다고 판단했다. 경찰이 당시 시위대를 저지하지 못해 차벽이 무너졌다면 서울 도심은 아수라장이 됐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부의 명령을 받고 따랐을 뿐인 현장 지휘관과 요원이 부당한 처벌을 받는다면 누가 앞으로 폭력시위를 막는 최일선에 서려 할 것인가.

신 전 단장과 최·한 경장은 백 씨 유족이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1년 반 넘게 다투다가 검찰 기소를 앞두고 유족 측의 요구를 100%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들이 국가 대신 자기 돈으로 배상하겠다고까지 한 것은 바뀐 정권의 경찰 수뇌부가 더 이상 이들을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경찰 수뇌부는 검찰 수사 결과 발표 전부터 국가 자격으로도 배상책임을 인정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국가 상대 배상소송에서 형사재판도 지켜보지 않고 국가가 민사책임을 인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사흘 앞인 21일은 경찰의 날이다. 정권 눈치만 보는 경찰은 스스로도 지키지 못할 뿐 아니라 국가의 법질서도 지키지 못한다.
#부끄러운 경찰의 날#백남기 씨 사건 국가책임#민중총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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