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하프타임’ 휘슬을 언제 불 것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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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만약 1년 동안 연봉을 그대로 받으면서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을 떠나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면 무엇을 하겠는가?”

농담이 아니라 정말 한번 심각하게 생각해 보자. 어떤 사람은 차를 몰고 국내 혹은 유럽이나 미국 동서횡단 등 여행을 하겠다고 할 것이다. 누구는 단기 연수나 요리, 목공과 같은 기술을 배우겠다고 할 것이다. 도서관이나 시골에 가서 책을 실컷 읽겠다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기만의 재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소설이나 시를 쓰거나 만화를 그려 보겠다고 할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과연 차 한잔에 케이크 먹으면서 잠깐 동안만 생각하는 팔자 좋은 소리에 그치는 것일까? 영어 표현 중에 ‘××머니(f*ck you money)’란 것이 있다. 이에 대한 정의는 조금씩 그 범위가 다르지만, 이 단어를 정의하는 데에는 세 가지가 핵심이다. 첫째, 맘에 안 드는 상사나 직장에 욕을 하고 그만둘 수 있을 정도의 돈을 가진 상태와 관련이 있다. 둘째, 넓은 정의로 쓸 때는 회사를 때려치우고 평생 일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금액을 말하고, 이를 계산하는 사이트도 존재하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마음만 씁쓸해지기 때문이다.

그보다 좁으면서 다소 현실적인 정의를 ‘불행 피하기 기술’의 저자 롤프 도벨리로부터 읽게 되었는데, 이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 해 동안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아볼 수 있는 정도의 금액을 말한다. 쉽게 말하면 1년 치 연봉으로 보는 것이다. 그것이 3000만 원이든 4000만 원이든. 자 이제 ××머니가 얼마인지 계산하려 하지 말고, 현재 받고 있는 연봉을 1년 동안 받으면서 정말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자. 아마도 이런 생각을 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아 ‘1년을 쉬는 것은 좋은데, 그 다음에 돌아와서 직장은 어떻게 하지?’라는 걱정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당연하다. ××머니는 단순히 농담으로 지나칠 수 있겠지만, 자신만의 커리어 여정과 발전의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 축구에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고, 그사이 하프타임이 있는 것처럼, 직장 생활을 하는 내 삶에도 전반전과 후반전이 있고, 하프타임이 있을 수 있다. 대략 25세에 직장 생활을 시작한다고 가정하고 50세에 직장을 나온다고 가정해 보자(현재 직장인이 실질적으로 직장을 떠나는 나이의 평균은 50세 정도이다). 직장에서 일하는 25년의 중간 지점을 잡아보면 37, 38세가 된다. 하프타임이란 전반전에 내가 어떻게 뛰었는지 되돌아보고, 잠시 쉬면서 후반전에 역전을 하거나, 전략을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쉬고 나서 다시 뛸 수 있는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하프타임이 아닌 것이다.

××머니에 대한 한 가지 시각은 젊은 시절 엄청난 돈을 벌어서 빨리 은퇴하여 평생 놀고먹을 수 있는 돈을 의미하지만, 이는 대다수 직장인과는 상관이 없는 시나리오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머니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은 30대 말에서 40대 초에 자발적으로 하프타임을 가지는 데 필요한 돈, 즉 1년 정도의 연봉을 뜻한다. 40대 중반을 넘어서면 하프타임을 갖기가 현실적으로 어려워진다. 1년 정도 연봉을 갖고 쉬었다가 다시 나를 고용해줄지에 대한 불안감이 실제로 너무 크기 때문이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하프타임이 필요할까? 물론 이는 철저히 개인의 결정이다.

최근에 만난 한 직장인은 30대에 배우자 출산휴가로 1년 동안 아내를 대신하여 아이와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의 하프타임을 가졌다. 40대 중반에 가까운 또 다른 직장인은 상사를 설득하여 휴직을 하고 1년간 뉴질랜드로 떠났다. 한국 시간으로 오전 9시에서 낮 12시까지만 이메일로 일하고, 나머지는 뉴질랜드의 해변에서 자기 나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 역시 10년 전 회사를 그만두고 반년 넘게 여행도 다니고 쉬면서 사업에 대한 구상을 정리했다. 통장 잔액은 줄어들어 불안했지만, 30대에 가장 잘한 결정 중 하나였다. 이렇듯 다양한 형태의 하프타임을 보내는 것은 모두 현실적으로 자기 나름의 ××머니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내 직장 생활에도 하프타임이 필요할까? 그렇다면 ××머니를 위한 통장을 하나 만들어 보면 어떨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직장인#생존의 방식#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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