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이야기]빙하와 나이테는 모두 알고 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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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독일 에르푸르트대의 법대생이던 마르틴 루터는 1505년 7월 2일 고향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천둥번개를 만나 두려워 떨며 신부가 되기로 하느님께 약속했다. 루터는 자신의 서원(誓願)을 지키기 위해 보름 뒤 에르푸르트에 있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입회하여 가톨릭 신부가 되었고 그 후 종교개혁의 창시자로 알려졌다. 천둥소리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알아들었던 루터와는 달리 같은 수도원의 열두 살 많은 선배였던 킬리안 라이프는 비와 바람과 햇살의 변화 속에서 조용히 하느님의 말씀을 찾아가는 구도자였다. 라이프는 15년간의 날씨일기를 꼼꼼히 작성하여 이를 바탕으로 그동안 전승되어 오던 날씨 예측에 관한 속설들이 대부분 틀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체계적으로 축적된 날씨 기록들은 잘못된 속설이나 오류를 바로잡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날씨를 예측하는 손쉬운 방법으로 이용되었다. 이는 날씨 변화에 모종의 패턴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데, 과거 날씨 기록들에서 주기(週期)라도 발견된다면 예측에 큰 설명력을 얻게 된다. 독일의 기후학자 브뤼크너는 카스피해, 흑해 등의 수위와 강수량 기록을 분석하여 기후의 35년 주기설을 1890년에 발표했다. 사람들은 브뤼크너 주기가 11년 주기의 태양 흑점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했지만 그 원인을 밝히지는 못했다.

과거 기록에 의존하지 않고 과학적 추론에 의해 주기를 찾아낸 사람은 세르비아의 밀루틴 밀란코비치이다. 그는 지구 공전 궤도의 변화, 자전축 기울기의 변화, 지구가 자전할 때 팽이처럼 요동치는 세차운동 등이 기후 변화의 주기를 결정한다는 가설을 세웠다. 이는 ‘밀란코비치 주기’로 불리는데 그의 주장은 생전에 빛을 보지 못했다. 그의 주기는 수만 년을 단위로 나타나는 것이기에 이를 입증하려면 그에 해당하는 날씨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애당초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덴마크의 지구물리학자 빌리 단스고르가 개발한 빙심(Ice Core) 시추기술 덕분에 과거의 지구 온도와 대기 정보를 알 수 있게 되면서 밀란코비치 주기는 빛을 보게 된다. 지금까지 시추된 빙심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2004년 남극 3270m 깊이에서 채취된 얼음 기둥인데 여기에는 약 80만 년 동안의 날씨 기록이 담겨 있었다. 밀란코비치가 계산했던 10만 년 주기의 기후 변화가 이 얼음 기둥에 일곱 번 나타나 있었는데 이로써 밀란코비치 주기는 정확한 것으로 인정됐다. 오랜 기간 축적되어온 날씨 기록은 이처럼 날씨 예측의 참과 거짓을 걸러주는 심판자 역할을 한다.

비록 문자로 기록되지는 않지만 빙하, 암석, 산호와 바다 퇴적물, 나무의 나이테 등은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몸에 날씨를 기록하면서 진실을 축적해가고 있다.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에 지난여름의 폭염은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지만 2018년 여름은 지구온난화의 분명한 표징을 드러낸 해였음이 지구 아카이브에 또렷이 기록되어 있을 것이다.
 
차상민 케이웨더 공기지능센터장
#빙하#나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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