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종국 기자의 슬기로운 아빠생활]<1> 첫 아이를 마주한 날의 솔직한 심정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9월 6일 11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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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00일, 새벽 4시 경. “남편, 나 배가 아파”라는 소리에 눈이 뻔쩍 떠졌다. 올 것이 왔다.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그녀가 곧 태어날 수도 있다. 책장 어딘가에서 종이 쪼가리를 하나 들고 왔다. 임산부 진통을 줄여준다는 ‘라마즈 호흡법’이었다. “습습, 후후?” 분명 산전 교육으로 배웠는데 기억도 안 난다. 에라이 모르겠다. 일단 종이에 적힌 대로 따라 해보자. 처음인데 제대로 할 리가 있나. 하지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아내도 아기를 처음 낳아 본다.

아내가 병원을 갈 때 가져가야할 짐(가방)을 챙겨놓은 것이 생각났다. 그런데 어디 있는지 기억이 안 났다. 고통에 눈을 지그시 감고 있던 아내에게 “가방 어딨어?”라고 물었다. 가방은 필요하니까. 우리 아버지는 내가 태어날 때 사우나에 가 계셨다고 한다. 사우나에 있을 때 내가 나온 것이 아니라 무서워서 가 계셨다고 한다. 최소한 우리 아버지 보다는 내가 좀 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증이 간격이 좁아졌다. 병원을 가야하는 타이밍이다. 아내를 차에 태웠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빨리 병원에 데려가는 것 밖에. 아내의 얼굴은 사색이 돼 있었다. 새벽이라 차가 없었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었다. 과속 방지턱. 나중에 아내가 한 이야긴데 병원으로 가는 길에 과속 방지턱이 그렇게 짜증이 났단다. 덜컹거릴 때 애가 나올 것 만 같았다더라.

당직 간호사들이 달려왔다. “산모님 어서 누우세요”라고 말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집에 가실 수도 있어요” 라고 하더라. (뭐?) 아, 어디선가 들었다. 초기 진통에 너무 놀라 병원에 왔더니 아직 애가 나오려면 멀어서 집으로 돌아간 산모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나도 그런 건가 싶었다.

양가 부모님들께 소식을 알리자마자 급하게 간호사가 나를 찾았다. “아버님 애 머리가 보여요. 그런데 의사 선생님이 집에서 오고 계세요. 오시면 바로 수술할게요.” 5분전까지만 해도 집에 돌아 갈 수도 있다며? 그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이제 곧 그녀(딸 아이)가 나온다. 내가 만든 그녀가 세상에 태어난다. 의사 선생님이 오셨다. “오~ 오~.” 이 순간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할 수 있는 건 없다. 그저 아무 일 없이 순산하길 바라는 수밖에… 수술실 밖에서 위생복을 입고 대기 했다. “애가 잘못됐다고 하면 어쩌지?” “산모랑 아기가 위급하다면 당연히 아내를 살려야지.” “착하게 살 걸….” “아기에게 첫 말은 뭐로 하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한 10분, 15분이 지났을까? 외마디 비병이 두어 번 들리더니 아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20분 만에 출산이라니 대단했다.

수술실로 들어갔다. 핏덩이 딸아이가 보였다. 그냥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다만, 그 순간에도 애한테 먼저 달려가지 말라고 아내부터 챙기라던 어느 선배의 슬기로운 조언이 떠올랐다. 와이프한테 먼저 다가갔다. “괜찮아?”라고 물었을 때 와이프는 고개를 끄덕였던 걸로 기억한다.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너무 아파서 남편한테 욕하거나 머리 채 잡는 산모도 있다던데)

탯줄을 자르란다. 어느 아빠는 너무 무섭고 떨려서 “이건 전문가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는 슬기롭지 못한 표현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당당히 가위를 잡고 탯줄을 잘랐다. 곱창 자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딸아이는 엄마랑 분리 됐다. 분명 초음파로 발가락 손가락 10개인 것을 확인했지만, 나도 모르게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세고 있었더라. 손가락 개수를 보고 탯줄을 잘랐는지 그 반대인지는 잘 생각이 안 난다.

아기가 엄마 가슴에 얼굴을 대자 울음이 그쳤다. “엇? 애는 울어야 한다는데 숨이 멎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심장 소리를 듣거나 엄마 가슴에 닿으면 편안해져서 바로 잠이 또 든단다. 내 손가락을 딸아이가 손으로 잡았다. 작은 힘이 느껴졌다. (이걸 무슨 테스트라고 하던데) 그 섬세했던 딸아이의 힘은 지금도 생생하다.

“안녕? 아빠야!” 라고 말해야겠다는 생각도 했었다. 하지만 결국 못했다. 솔직한 심정은 “와, 이제 저 애를 내가 키워야 하는구나…”였다. 내가 ‘먹여’ ‘살려야’ 하는 존재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빠라는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어떤 본성이 더 강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아내의 얼굴엔 안도감이 가득했다. 아내가 아이를 안았을 때, 그 행복해 하던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평생 스냅사진처럼 남았으면 하는 한 장면이다. 아내와 딸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딸을 품에 안아봤다. 정말 따뜻했다. 그런데 또 그렇게 떨리더라. 쉬울 줄 알았는데, 행여나 다칠까 조심조심…. 어느 간호사가 그러기를 모든 아빠들이 그 순간 그렇게 어설플 수가 없단다.

그렇게 딸과 나의 첫 만남은 시작됐다. 참 고마웠다.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빨리 나와 주어서.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고 속으로 수십 번 말했다. 나중에 자식에게 어떤 욕심을 부릴 진 모르겠지만 최소한 그땐 그랬다. 사실 출산에 있어서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다. 여성들 입장에서 보면 “애는 같이 만들었는데 왜 고통은 여자만 겪어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그냥 가만히 아내 옆에 있어주는 것이 최선인지도 모른다. 욕이나 안 먹으면 다행이다.

돌아보면 참 감동적인 만남이었지만, 첫 아이를 만난지 2년이 지난 지금 나는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지나고 보니 애가 뱃속에 있을 때가 진짜 좋았던 시절이구나….” 그땐 미처 몰랐다. 육아라는 엄청난 현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변종국 기자 bj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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