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안경 시선 국제커플, 구경거리 아니거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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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20>국경 넘은 사랑에 대한 매너

■ 일본인 친구보고 ‘스시녀’라니… 너무 속상해

“오∼ 스시녀!”

일본인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했을 때 친구가 보인 첫 반응입니다. 온라인에서 통용되는 가벼운 유머라는 건 알지만 달갑지 않은 표현이더군요. 옆에 있던 선배 질문은 더 황당했습니다. “일본 여자는 낮에 순하고, 밤에 화끈하다던데 정말이니?” 함께 만난 자리에서 여자친구에게 “독도가 어느 나라 땅이냐” “소녀상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며 외교적 문제를 닦달하듯 묻는 친구도 있었죠.

한국 어디에서나 외국인을 마주치는 게 더 이상 신기한 일이 아닌 시대지만 여전히 한국에서 국제연애를 하는 건 꽤 피곤한 일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변의 호기심과 관심은 때로 무례함과 불쾌함으로 다가오죠. 국적도, 인종도 다 떼고 그냥 ‘사랑하는 사람들’로 봐줄 순 없는 건가요?
 

■ 지나친 관심은 실례… 평범한 연인 대하듯 바라봐 주세요

당신이 애인과 지하철을 탔다. 가만히 서 있는데 노인이 째려보며 침을 뱉는다. 손잡고 걸어갈 땐 모르는 아줌마가 “차라리 모텔방을 잡지…” 하며 혀를 찬다. 어딜 가나 빤히 쳐다보는 사람들 때문에 동물원 원숭이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그들에게 바로 따질 것이다. “왜 쳐다보세요?”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침을 뱉으세요?” 하지만 외국인을 3년간 만난 적이 있는 주희(가명·31·여) 씨는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대놓고 따지지 못했다.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외국인과 사귀는 이를 ‘특이한 사람’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성(性)적 이유로 만날 것’이란 편견이 적지 않다.

주희 씨는 “외국인과 연애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개방적인 여자라고 생각해 은근슬쩍 야한 농담을 걸거나 남자친구와의 성생활을 묻는 이들이 많아 곤혹스러울 때가 많았다”고 말했다. 과거 ‘미군 남성-한국 여성’을 매춘 프레임에서 봐온 사회적 시각이 여전한 탓이다.

반대로 외국인 여성을 사귀는 한국인 남성들도 “서양 엘프가 왜 너 같은 동양 남자를 만나냐” “옐로 피버(아시아 사람을 맹목적으로 좋아하는 증세)에 빠진 사람 아니냐”는 등의 놀림을 받기 일쑤다.

외국인 연인에 대한 고정관념에 인종이나 출신 국가에 대한 편견까지 더해지면 무례한 발언의 수위는 더 높아진다. “왜 하필 흑인이야?” “동남아 남자가 어디가 좋아?” 같은 질문을 받는 건 예삿일이다. 튀니지 출신 남성과 5년을 사귄 뒤 결혼한 글로리아 김 씨(27·여)는 연애시절 “남자친구가 테러단체 출신 아니냐?” “무슬림은 일부다처제를 선호한다는데…” 등의 발언을 자주 들었다. 김 씨는 “내 면전에서 ‘무슬림은 다 죽여야 돼’라고 말한 사람도 있었다”며 “종교와 국가를 떠나 모든 사람은 상처받고 슬퍼할 줄 안다는 걸 기억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제 커플들은 외국인 연인의 직업이나 신분을 빌미로 공격받는 경우도 많다. 흔히 상대가 학원 영어강사이거나 미군일 경우 “자국에서 변변한 직업을 갖기 힘든 사람들이 영어 하나로 한국에서 직장 잡고 한국 여자들을 만나고 다닌다”며 뒷말을 하기 일쑤다. 학원 강사 출신 남성과 결혼한 재윤(가명·32) 씨는 “남편은 나보다 우수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지만 한국에서 영어강사 외에 다른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한국에서 돈을 벌며 박사과정까지 마쳤는데 단지 학원 강사라는 이유만으로 폄하하는 게 불쾌하다”고 말했다.

때론 잘못인 줄 모르고 저지르는 무례한 행동들도 있다. 웹툰 서비스 레진코믹스에 ‘국제연애 절대로 하지 마라’를 연재 중인 작가 쑤(필명)는 4년간 미국인과 사귀고 결혼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만화로 그려냈다. 친하지 않은 지인이 남자친구와 함께 보자고 해서 나갔더니 영어 인터뷰 연습을 하려 했다는 일화, 카페에서 “저 외국인이랑 영어로 대화하고 와보라” “영어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데 말을 못하니?”라며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를 만난 경험 등이다.

평범한 미국 시민인 그의 남편에게 “미국은 왜 그렇게 한국 정치에 관여하나” “당신도 총을 가지고 있느냐” 같은 황당하고 불편한 질문을 쏟아내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캐나다인’이라고 소개할 생각까지 했다는 것. 쑤 작가의 남편은 “국제커플이 많은 미국에 비해 한국은 외국인과 사귀는 걸 특이하게 생각하고 유별나게 바라본다”며 “그냥 평범한 커플을 대하듯 바라봐주는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글로벌코리아 매너클래스’의 저자인 박영실 숙명여대 외래교수는 “한국은 외국의 음식과 대중문화엔 개방적이면서도 여전히 국제연애만큼은 폐쇄적”이라며 “상대에게 실례가 될 과도한 관심이나 편견은 겉으로 표현하지 않는 게 매너”라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국제커플을 대할 때 ‘ABC 원칙’을 기억하라고 조언했다. A는 외모(Appearance), 특히 피부색이나 신체 특징에 대한 편견을 버리라는 것이다. B는 행동(Behavior)에 신경 쓰라는 의미로 빤히 쳐다보거나 무례한 발언을 하지 않도록 주의하라는 의미다. C는 문화(Culture)적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잊고 싶은 민족의 과거나 상처, 종교적 외교적 민감한 발언은 최대한 삼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수연 sykim@donga.com·이지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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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커플#국경#매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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