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편도 아닌데… 시누이 남편을 ‘서방님’ 불러야 하나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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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쓰는 우리 예절 新禮記(예기)]<4> 어색한 친인척 호칭



■ 결혼 1년차 새댁의 넋두리


결혼 1년 차 새색시입니다. 저와 동갑인 남편에겐 다섯 살 터울의 여동생이 있어요. 남편과 오래 연애를 해 데이트 때 아가씨를 여러 번 만났어요. 결혼 전엔 이름을 부르고 반말을 했는데, 결혼하니 아가씨란 호칭이 영 입에 붙지 않네요. 저도 모르게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 쓰다가 어른들에게 한 소리 들었어요.

명절이 오면 더욱 ‘대략 난감’입니다. 남편의 사촌동생 중엔 중학생도 있어요. 그들에게 “도련님, 식사하세요” “아가씨, 오랜만이에요” 하고 말할 때마다 ‘몸종 언년이’가 된 기분이에요.

대학생인 남편의 사촌동생은 저에게 “형수!”라며 ‘님’ 자를 빼고 부르더군요. 저도 ‘도련!’이라고 부르고 싶은 걸 꾹 참아요. 남편의 동생이 결혼하면 도련님이 아니라 ‘서방님’이라고 불러야 한다죠? 심지어 시누이의 남편도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게 맞대요. 정말 이상하지 않아요? 멀쩡한 내 서방을 두고 왜 애먼 사람에게 서방님이라고 하는지….

말 나온 김에 시댁(媤宅)과 처가(妻家)는 또 어떻고요. 시댁은 높여 부르면서 처가는 왜 ‘처댁’이라고 안 하죠? 처갓집은 ‘양념치킨’ 앞에나 붙였으면 좋겠어요.
 

■ 시대에 뒤처진 호칭 예법

신혼부부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 하나가 ‘호칭’이다. 연상연하 부부들은 ‘호칭 갈등’이 더 크다. 이윤화(가명·39·여) 씨는 “남편이 나보다 여섯 살 어려 남편의 누나도 나보다 어리다”며 “그런데도 ‘형님’이라고 부르며 깍듯이 존댓말을 써야 하니 솔직히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애초 부를 일을 만들지 않는 게 최상”이라며 “꼭 해야 할 얘기가 있다면 호칭을 생략하거나 말끝을 흐린다”고 했다. “형님, 이번 어머니 생신 때 음식 해가면 되…나?” 하는 식이다.

무엇보다 젊은이들이 의아해하는 건 시댁 쪽 사람에겐 ‘님’ 자를 붙이면서 왜 처가 쪽엔 그렇게 하지 않느냐다. 예컨대 남편의 누나는 형님, 남편의 형은 아주버님, 남편의 여동생은 아무리 어려도 아가씨다. 남편의 남동생은 미혼일 땐 도련님, 결혼 후엔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게 국립국어원이 규정한 예법에 맞는 표현이다. 하지만 처가 쪽은 다르다. 아내의 남동생은 처남, 아내의 여동생은 처제, 아내의 언니는 처형이다.

최서연 씨(38·여)는 “친오빠가 남편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데, 시부모님이 ‘형님이라고 부르는 건 전통이 아니다. 그냥 처남으로 불러라’고 해 불쾌했다”며 “전 저보다 열 살 이상 어린 남편의 사촌 여동생들에게까지 ‘아가씨’라고 하는데, 마음이 상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했다.

동갑과 결혼해도 특별히 나을 게 없다. 강민영 씨(35·여)는 “남편과 동갑이고 결혼 전에 서로 이름을 불렀는데 결혼하고 난 뒤 시댁에서 눈치를 줘 ‘신랑’ ‘○○아빠’라고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남편은 예전처럼 여전히 강 씨의 이름을 부른다. 하지만 시댁이나 처가에서 문제 삼지 않는다. 강 씨는 “심지어 내가 2개월 누나다”라며 억울해했다.

국어원이 지난해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국어원이 2011년 규정한 ‘표준 호칭’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원래 남편 여동생의 남편은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게 표준 호칭이지만 설문 응답자의 62.7%는 ‘고모부’라고 부른다. 만약 아이가 없다면 고모부라고 부르는 것도 어색하다. 마땅한 호칭이 없어 가족이면서도 가족 같지 않은 서먹한 관계로 남을 수밖에 없는 셈이다.

여성민우회는 2005년 우리나라의 성차별적인 호칭에 문제가 있다며 새로운 대안 명칭을 찾는 캠페인을 벌였다. 하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했다. 여성민우회 최원진 성평등복지팀 활동가는 “당시만 해도 한국 사회의 개인은 가족제도 안에서 존재하다 보니 대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이름을 부르자”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국어원 조사에서 ‘도련님이나 아가씨라는 호칭 대신에 다른 말을 쓴다면 무엇이 좋겠느냐’는 질문에 ‘이름을 부르자’는 의견이 33.8%로 가장 많았다. 아내의 동생을 부를 때도 36.3%는 이름을 부르자고 답했다. 공손하게 서로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편하게 이름을 부르기보다 ‘○○ 씨’라고 존칭을 붙이자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시댁과 처가라는 말도 시대 흐름에 맞춰 바꿀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적지 않다. 서로의 집안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여성은 ‘남편 본가’(10.6%)를 선호했고, 남성은 ‘처댁’(19.1%)을 대안으로 꼽는 응답이 많았다. 국어원은 “이번 조사를 바탕으로 올해 대안 호칭을 만들어 보겠다”고 밝혔다.

○ 당신이 제안하는 이 시대의 ‘신예기’는 무엇인가요. newmanner@donga.com으로 여러분이 느낀 불합리한 예법을 제보해 주세요.

노지현 isityou@donga.com·이미지·유원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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