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인의 잡학사전]러시아는 평창 출전 No…러시아 선수는 Yes,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6일 17시 27분


코멘트

얼핏 생각하면 좀 이상하기도 합니다. 올림픽에 그 나라는 출전을 금지하면서 그 나라 선수는 출전을 허용해도 괜찮다는 게 말이죠. 음주 운전은 금지했지만 술 마시고 운전하라는 뜻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조금만 따져 보면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6일 스위스 로잔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집행위원회에서 2018 평창 겨울 올림픽 참가 금지라는 징계를 내린 대상은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이지 러시아 선수단이 아닙니다. IOC에서 이날 발표한 보도자료(아래 사진)를 보시면 확실히 그렇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바로 그다음 줄이 러시아 선수 개개인은 (아래 제시할) 엄격한 조건 아래서 평창 올림픽에 초청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이어서 이 선수들은 ‘러시아에서 온 올림픽 선수(OAR)’라고 부르게 된다는 문장이 등장합니다. 마지막은 러시아 대표팀 유니폼과 러시아 국기, 국가(國歌)를 쓸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대신 OAR라고 쓴 유니폼과 오륜기, 올림픽 찬가를 써야 합니다.

이 보도자료 아래 나오는 ‘엄격한 조건’은 어떠한 이유로든 한 번이라도 도핑(약물을 써서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행위)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한 선수는 초청 대상에서 빼겠다는 게 뼈대입니다. IOC에서 ROC에 이런 징계를 내린 이유가 국가적으로 도핑을 저질렀기 때문이니 엄격하다기보다 당연한 조건입니다.

그러니까 도핑과 무관한 러시아 선수 또는 팀은 이번 올림픽에 참가하는 데 별 지장이 없습니다. 도핑 적발 경험이 없는 선수가 ‘나는 애국심 빼면 시체야. 우리나라(러시아)를 대표할 수 없는 상태로는 절대 올림픽에 나가지 않겠어’라고 생각하지만 않는다면 올림픽에 나갈 수 있는 셈이니까요.

2014 소치 올림픽 때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있는 빅토르 안(32·한국명 안현수). 소치=변영욱 기자 cut@donga.com
2014 소치 올림픽 때 남자 쇼트트랙 10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 러시아 국기를 들고 있는 빅토르 안(32·한국명 안현수). 소치=변영욱 기자 cut@donga.com


● 원래부터 올림픽 참가 선수는 ‘국가대표’가 아니었다.

그러면 IOC에서 이렇게 ROC와 러시아 선수 개개인을 구분한 이유는 뭘까요?

많은 사람이 흔히 착각하는 것과 달리 올림픽 경기는 개인 또는 팀 간 경쟁이지 국가 간 경쟁이 아닙니다(The Olympic Games are competitions between athletes in individual or team events and not between countries). IOC 올림픽 헌장 6조 1항에 분명히 그렇게 나와 있습니다(아래 사진 참조).


네, 그런데 우리가 올림픽에 참가하는 개인 또는 팀을 흔히 ‘국가대표’라 부르는 건 이 조항에 나온 것처럼 각 국가 올림픽 위원회(NOC·National Olympic Committee)에 자국 국적 선수 가운데 올림픽에 누구를 내보낼지 선택할 권한이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한국올림픽위원회가 2009년 대한체육회와 완전히 통합해 현재 대한체육회가 NOC 기능을 맡고 있습니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NOC가 바로 당연히 ROC입니다. 그런데 IOC에서 ROC에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으니 러시아 국적 선수 중에는 누가 평창 올림픽에 나가야 할지 결정할 수 있는 단체가 일시적으로 사라진 셈이 됩니다. 그래서 IOC에서 러시아 선수를 올림픽에 ‘초청’하는 형식을 취하겠다는 겁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닙니다. IOC는 쿠웨이트 정부가 쿠웨이트 올림픽 위원회 선거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2015년 이 나라 올림픽 위원회에 자격 정지 처분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쿠웨이트 사격 대표 페하이드 알디하니(51·아래 사진)는 개인 선수 자격으로 지난해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해 남자 더블트랩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국가대표 시스템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이렇게 NOC에 참가 선수 선발 권한을 준 건 1908년 런던 올림픽 때부터였습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제는 IOC에서 정식 대회로 인정하지 않는 1906년 중간 올림픽(Intercalated Games) 때부터 올림픽에 참가하려는 선수는 NOC를 통해 참가 자격을 얻어야 하는 방식이 됐습니다.

그 전까지는 올림픽 참가를 희망하는 선수 또는 팀이 직접 올림픽 개최국에 가서 신고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도 1896년 아테네(그리스), 1900년 파리(프랑스) 대회 때까지는 주로 유럽 선수가 참가하던 올림픽이 유럽 대륙 안에서 열리다 보니 참가자가 직접 개최국을 찾기가 그래도 상대적으로 수월했습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때 열린 줄다리기 경기 장면. 줄다리기는 1920년 안트베르펀 올림픽 때까지 정식 종목이었습니다. IOC 홈페이지
1904년 세인트루이스 올림픽 때 열린 줄다리기 경기 장면. 줄다리기는 1920년 안트베르펀 올림픽 때까지 정식 종목이었습니다. IOC 홈페이지

문제는 1904년 대회가 대서양 건너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렸다는 것. 1900년 파리 대회 때 1224명이었던 올림픽 참가 선수가 1904년에는 650명으로 줄었습니다. 그러자 IOC는 올림픽 참가 선수 등록 방식을 바꿨고 1908년 런던 대회 때는 2024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렇게 NOC를 거쳐야 하기 전에는 여러 나라 선수가 팀을 꾸려 올림픽에 출전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런 혼성국 팀은 3개 대회에서 금 8개, 은 5개, 동 4개 등 메달을 총 17개 따기도 했습니다. 올림픽 때는 ‘한국 = KOR’같은 IOC 국가 코드를 사용하게 되는데 이 혼성국 코드는 ‘ZZX’였습니다. 물론 지금은 쓰지 않는 코드입니다.

●마라톤은 왜 42.195㎞를 뛸까


여기까지 꼼꼼하게 읽어주신 분이 계실지 모르니 1908년 런던 올림픽 관련 ‘잡학’도 몇 가지 소개하죠.

이 대회 때부터 NOC를 통해 선수가 올림픽에 나가게 됐으니 무엇을 또 처음 하게 됐을까요? 네, 개회식 때 선수단이 국기를 들고 입장하는 것도 이 대회가 처음이었습니다. 문제는 당시 핀란드가 러시아 제국에 속해 있었다는 것. 핀란드 선수단은 국기 없이 입장했죠. 국가대표 유니폼이 등장한 것도 이때 처음.

1908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 때 입장하고 있는 영국 선수단. 위키피디아 공용.
1908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 때 입장하고 있는 영국 선수단. 위키피디아 공용.

이 대회는 1908년 4월 27일부터 그해 10월 31일까지 187일(6개월 4일) 동안 열렸습니다. 근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오래 열린 대회가 1908 런던 올림픽이죠. 이렇게 대회가 길었던 이유 중 하나는 피겨스케이팅 때문. 피겨스케이팅은 물론 겨울 종목 자체가 올림픽에 등장한 게 이때가 처음이었습니다. 첫 번째 겨울 올림픽은 이로부터 16년이 지난 1924년 프랑스 샤모니에서 처음 열렸습니다.

1908년 런던 올림픽 주경기장에 있던 귀빈석. 사진 가운데 왼쪽에서 여덟 번째 서 있는 남자가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7세. 그 증손녀가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
1908년 런던 올림픽 주경기장에 있던 귀빈석. 사진 가운데 왼쪽에서 여덟 번째 서 있는 남자가 당시 영국 왕 에드워드 7세. 그 증손녀가 현재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이 대회 때는 올림픽 마라톤 선수가 42.195㎞를 뛴 첫 번째 대회이기도 합니다. (아직도 마라톤 평원에서 아테네까지 거리가 42.195㎞라서 그렇게 뛴다고 알고 계시는 거 아니죠?) 당시 영국 왕가는 윈저성(영국 왕가 주말 별장)을 출발한 마라톤 선수가 주 경기장 안에 왕족이 앉아 있던 ‘귀빈석(Royal Box)’ 앞으로 골인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코스를 짜다 보니 딱 42㎞가 아니라 195m가 붙었습니다. 이후 1921년 국제육상경기연맹(IAF)에서 42.195㎞를 공식 거리로 확정했습니다.

이 대회 마라톤 경기 때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표 찰스 헤퍼론(1878~1932)이 골인 지점까지 약 2.5㎞를 남겨뒀을 때까지 선두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관객이 샴페인병을 터뜨려 그에게 한잔 건넸고 이를 받아 마신 헤퍼론은 위경련을 일으켰습니다. 바닥에 한참을 나뒹굴고 나서야 다시 뛰기 시작한 페허론은 결국 3위로 골인했습니다. (나중에 선두가 실격당해 최종 은메달). 이때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말이 ‘샴페인을 너무 빨리 터뜨렸다’는 건 새빨간 거짓말이라나 뭐라나.

거짓말이 하필 ‘새빨간’ 이유까지 말씀드리면 너무 긴 글이 되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잡학사전’은 언제든 여러분 제보를 기다립니다. 궁금하기는 한데 직접 알아보기 귀찮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으시면 언제든 kini@donga.com으로 e메일 보내주세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