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의 재발견]〈68〉‘의사’는 [의사], ‘희사’는 [히사]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8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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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아래 단어를 발음하면서 무엇을 논의할지 예측해 보자.

무늬, 희망, 흰색, 유희, 희미하다

표기에 ‘ㅢ’를 갖는 단어들이다. 이를 모두 [ㅣ]로 발음하는 단어들이기도 하다. 우리는 ‘희망’을 [히망]이라고 발음한다. 표준 발음 역시 [히망]이다. 두 가지 의문이 생겨야 한다. 왜 ‘ㅢ’를 ‘ㅣ’로 발음하는 것일까? 또, ‘ㅣ’로 발음하는데 왜 ‘ㅢ’로 표기하는 것일까?

첫 문제를 해결하려면 위 단어들의 ‘ㅢ’ 앞에 자음이 놓였다는 점을 발견해야 한다. 아래 단어들과 비교해 보자.

의미, 의의, 강의, 성의, 주의

‘ㅢ’ 앞에 자음이 없는 예들의 발음은 앞서 본 것들과 좀 다르다. 이들 ‘ㅢ’는 그대로 [ㅢ]로 소리 내는 경우도 많다. 특히 첫음절의 ‘ㅢ’는 [ㅢ]로 소리 내는 빈도가 훨씬 더 높다. 표준어도 우리 발음을 안다. 그래서 규칙에 그대로 반영한다. 정리해 보자.

① 자음을 가진 ‘ㅢ’: [ㅣ]로 발음
② 자음이 없는 ‘ㅢ’: [ㅢ]로 발음,
단 첫음절이 아닌 경우 [ㅣ]도 허용


발음 ①, ②의 이면을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 ‘ㅢ’는 아주 약한 모음이다. 그래서 자주 ‘ㅡ’를 잃고 ‘ㅣ’로 소리가 난다. 자기 소리로만 내는 경우는 첫음절의 ‘의’뿐이다. 옛날부터 그랬을 리는 없다. 그러기에는 우리말에 ‘ㅢ’를 가진 단어가 너무 많다. ‘ㅢ’가 이렇게까지 약해진 이유는 뭘까? 우리 문자가 그 실마리를 보여준다. 아래 모음의 문자 모양을 눈여겨보자.

모두 뒤에 ‘ㅣ’가 들었다. 문자를 만들던 당시에 ‘ㅢ’가 ‘ㅔ, ㅐ, ㅚ, ㅟ’와 무리를 이루었음을 보이는 증거다. 훈민정음의 글자 모양에 소릿값이 과학적으로 반영된 점은 오늘날에도 칭송받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오늘날 ‘[ε], [e]’로 소리 나는 ‘ㅐ, ㅔ’가 세종대왕 당시에는 ‘[ay], [¤y]’로 소리 나 이것이 문자 창제에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

자음이나 모음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긴밀한 체계를 이루고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에 있다. 옛날의 ‘ㅢ’는 ‘ㅔ, ㅐ, ㅚ, ㅟ’와 무리 지어 단단한 체계를 이루었다. 그러다 무리 안의 다른 친구들은 모두 다른 것으로 변해 버렸다. ‘ㅢ’만 외로이 남은 것이다. 오늘날 ‘ㅢ’가 약해진 것은 이 때문이다. 무리 지었을 때 단단했던 관계가 동료들의 변화로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빈방에 홀로 남은 ‘의’가 쓸쓸히 약해지고 있는 이유다.

둘째 질문은 간단하다. 아직 ‘ㅢ’의 변화는 완료되지 않았다. 우리의 머릿속의 ‘ㅢ’는 여전히 ‘ㅢ’다. 표기는 그 머릿속 질서를 반영한 것이다. 오히려 다른 질문 하나가 더 중요하다. ‘나의’를 [나에]로 발음하는 것은 어떻게 된 것이냐고. 여기서 ‘의’는 실질적 의미가 없는 조사다. 의미가 없는 형식이 가장 빨리 변한다. 역시 규범에 반영되어 있다. 조사 ‘의’의 경우는 [에]로 발음하는 것을 허용한다고. 물론 우리의 머릿속 질서는 표기 그대로 ‘의’다.

김남미 홍익대 국어교육과 교수



#맞춤법#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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